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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마의 변천사<1>

일제때 법인 인가만 제한…한 동안은 자유방임 경마
1922년 조선경마구락부가 최초 시행
단일화 거쳐 1949년 한국마사회 개칭

우리나라 최초의 경마시행 법인은 일제강점기 시대였던 1922년 4월5일 설립인가를 받은 조선경마구락부(朝鮮競馬俱樂部)였다.

‘구락부’는 ‘클럽’의 일본어 음역으로 요즘말로 하면 ‘조선경마클럽’정도가 된다.

당시는 경마관련 법령이 없어 ‘공익에 관한 사단 또는 재단으로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은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 이를 법인으로 할 수 있다’는 일본민법의 규정을 근거로 사단법인체를 설립했다.

조선경마구락부는 한강변 백사장에 상설경마장을 만들어 매년 봄과 가을에 경마대회를 개최했고 마주자신이 직접 기승하는 ‘신사기승마경주’가 별도로 편성됐다.

이를 계기로 1920년대에는 전국에서 경마구락부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20여개에 달하기도 했다.

이중 법인설립의 인가를 받은 경마구락부는 서울 조선경마구락부를 비롯, 평양 평남레이스구락부, 신의주 국경경마구락부 등 전국 6개 도시에 6개 구락부 뿐이었다.

최초 경마구락부가 설립된 후 약 10년간은 법인구락부의 인가만 제한할 뿐 경마의 개최를 통제하거나 단속하지 않았다.

따라서 임의단체가 경마를 시행해도 아무런 제약이 없는 ‘자유방임경마’의 시기였다.

그러다가 30년대에 접어들어 만주사변이 발발하고 군마의 수요가 급증하자 마필자원의 확보를 위해 수립된 ‘조선마정제1기계획’에 따라 최초의 경마법규인 조선경마령이 제정·공포됐다.

조선경마령의 시행으로 경마는 사단법인 경마구락부만 개최할 수 있었고 1933년에는 전국의 경마구락부를 조정·통제하는 사단법인 조선경마협회가 설립됐다.

1937년에는 함흥, 청진, 웅기의 3개 경마구락부가 신설돼 9개 도시에서 경마를 시행했다.

조선경마협회는 1942년 조선마사회로 시행체가 단일화되기까지 약 10년간 경마계를 이끌었다.

중·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되자 마필을 전담하는 기구의 설립이 필요하게 됐고, 1942년 조선마사회령의 공포와 함께 전국의 경마구락부가 조선마사회로 단일화 됐다.

조선마사회는 조선경마협회와 조선경마구락부 직원을 흡수해 조직을 꾸렸으며 각 경마구락부로부터 전국의 경마장을 인수했다.

조선마사회가 인수한 경마장은 서울의 경성경마장을 비롯해 부산, 대구, 군산, 평양, 신의주, 함흥, 청진, 웅기의 9개 경마장이었다.

8.15 해방이 되면서 조선마사회는 나명균 씨 등 한국인 승마애호가들에게 인계됐다.

미군정은 1945년 11월8일 조선마사회를 인수하는데 앞장섰던 나명균 씨를 초대회장으로, 이창래 씨를 부회장으로 임명했다. 이 후 조선마사회는 한국인들의 손으로 경마를 시행해 나갔으며, 1949년 한국마사회로 회명을 개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마사회는 회명을 개칭한 9월29일을 창립기념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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