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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브람스의 자화상

이창식 주필

독일의 세계적인 작곡가 브람스(1833~1897)가 타계한지 112년째가 된다. 그는 일찍이 피아노를 배워 14살때부터 작곡을 해 신동(神童) 소리를 들었다. 브람스는 슈만을 만나면서 음악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하는데 슈만은 “이 젊은이에게서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다”고 극찬했다. 브람스는 약관 20세에 음악가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인물에게는 일반과 다른 가족력과 기인한 취향이 있는 법인지 브람스도 예외가 아니였다.

브람스의 아버지 요한은 콘드라스 주자로 24살 때 요한나와 결혼하게 되는데 그녀의 나이 41세로 17세 연상의 여인이었다. 브람스는 은사인 슈만이 죽자 그의 부인 그라라와 깊은 관계를 갖게 되는데 그 여인 역시 14세의 연상이었다. 연상의 여인 선호는 부전자전이었다. 일본의 음악평론가 사에구사시게아끼(三枝成彰)씨가 한 잡지에 기고한 브람스 ‘이력서’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그의 성격은 사람을 싫어하고, 예의를 모르며 완고한 데다 비꼬기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인정 많고 의협심이 강했다. 어느날 이웃집에 불이 났을 때 방안으로 뛰어 들어 사람들을 구해냈다고 한다. 그는 애기를 갖지 못했지만 아이들을 좋아해서 여행 때는 늘 호주머니에 과자를 넣고 다니면서 어린이들에게 나눠주는 친절을 잊지 않았다. 그의 좌우명은 ‘고독, 그러나 자유’로 베토벤의 석고가면과 비스마르크의 흉상을 실내에 장식하는 보수적 애국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13살 때 술을 배워 죽을 때까지 술을 즐겼다. 어릴적부터 혼자 놀기를 좋아했고, 값싼 납으로 만든 병정 장난감은 17살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지만 결코 여성 혐오자는 아니였다. “사랑은 하되 얽매이는 것은 싫다.”는 것이 그의 결혼관이었다. 그래서 그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사실을 부정했다. 돈에도 관심이 없어서 저축 따위는 하지 않았고, 돈이 생기면 이웃을 돕는데 썼다. 어머니 요한나가 76세로 죽자, 아버지 요한은 카로리네와 재혼하는데 그때 아버지는 59세였는데 계모는 18세 연하의 41세였다. 1897년 4월 3일 브람스는 “고맙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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