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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동 성범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신고↑ 구속↓ 모순된 상황
공동체의식 갖고 대응하자

 

대낮 어느 시골마을에서 60대의 한 남자가 30대 여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다. 남자를 죽인 여자는 다름 아닌 21년 전 9살의 어린 여자아이다. 1991년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발생했던 일인데, 어릴 적 이웃 아저씨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후 줄곧 심각한 심리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마침내 가해자를 살인함으로써 자신의 고통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던 사건이다. 또 1992년에는 의부에 의해 초등학교때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성폭력에 시달려야 했던 여자아이가 자신의 남자친구와 의부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는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아동 성폭력 사건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18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극악무도한 성범죄의 행각을 보면서 다시 사회를 개탄해마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아동 성폭력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자세를 점검해봐야 한다.

경찰청 보고에 의하면 성폭력 신고율이 2002년도 6천119건에서 2006년도 8천759건으로 매해 평균 9%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작년 전체 성폭력 피해신고 1만7천178건 중 13세 미만 아동피해사례가 1천220건으로 7.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날로 심각해지는 아동 대상 성범죄에 대해 선진외국은 물론 우리나라도 재발방지를 위해 형량을 강화하고, 미성년자 대상으로 성범죄의 상습성이 인정된 사람은 전자감독(소위 전자발찌)을 실시하고, 소아성기호증 등 정신장애를 가진 범죄자의 경우 15년 범위 내에서 수용치료를 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하였다.

이와 같이 여러 법과 제도의 시행을 강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구속률은 2003년 61.4%에서 2007년에는 30%대까지 떨어지고 있다. 신고율은 증가하나 구속률은 떨어지는 모순된 상황,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아동성폭력에 대한 기존의 형사정책은 이미 유죄가 확정된 피고인에 대한 형량이나 가중처벌이 중심이 되어왔다. 그러나 정작 성폭력을 당한 아동들은 신고하기도 어렵고 설령 신고하더라도 그 가해자가 기소가 되어 재판에 서는 것은 더욱 힘겨운 현실이다. 유일한 목격자이자 피해자가 바로 아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동수사단계부터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아동의 진술을 전문화된 기법으로 확보함으로써 아동의 진술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이미 서구는 전문가에 의하여 아동진술을 확보하고 이를 수사 및 재판단계에 증거자료로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개선은 어느 한 분야만의 변화나 책임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다양한 집단과 자원이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피해아동이 법률, 의료, 상담 등 제반 분야에서 안정적인 서비스와 지원을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 미국 뉴욕의 피해자지원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지원센터는 소아과 및 정신과 전문의, 변호사, 검사, 경찰, 심리학자,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23명이 참여하여 말 그대로 다학제간의 교류에 기반한 네트워크이다. 이들은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피해아동과 가족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논의한다. 현재 뉴욕에는 이러한 지원센터가 11개가 있는데 아동 피해자가 발생시 피해에 대한 증거의 유무와 상관없이 우선 지원센터로 아동이 보내지고 피해와 관련한 각종 검사 및 인터뷰가 이루어지고, 이후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적합한 지원이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아동이나 보호자가 지원센터에 사건을 알리면 이후 검찰에 신고가 되어 후속 조치가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을 구축한 이들을 부러워하며 물어보았다. 어떻게 이러한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느냐… 대답은 ‘열정과 희생’이었다. 성폭력 문제를 끊임없이 사회문제화하고,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수없이 많은 캠페인과 교육을 실시하고… 이런 체계가 구축되기까지 4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피해자가 성적으로 문란하니 책임이 있다고, 가해자가 우발적으로 그런 것이라고, 아동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고, 피해자나 그 가족이 무슨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냐고… 우리 사회가 피해자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사이 그렇게 성폭력은 우리 곁에 커다란 사회적 공포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공포에 무기력해질 것인가 아니면 열정과 인내를 가지고 이 공포에 맞설 것인가. 이 선택은 누구에게 달려있는가! 누군가의 열정에 무임승차 할 것인가? 내가 아니니 다행이라며 누군가의 희생에 안도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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