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사태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지난 13년간 유예됐던 복수노조허용 규정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규정의 내년 발효를 앞두고 또 한번 노동계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 20일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과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은 회동을 갖고 정부가 복수노조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내년부터 시행하려는 것에 맞써 연대 총파업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이념적 성향이 달라 서로 원색적인 비난도 불사할 정도로 대립해왔던 두 노총이 의기투합하여 적극적으로 저지할려는 두 제도는 외국에서는 오래전 정착된 글로벌 스탠더드다.
특히 노조 전임자 임금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노조 전임자에게 회사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과 일본은 노조 전임자 임금을 포함한 노조 경비를 사측이 부담하는 것을 부당 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고, 복수 노조도 근로자의 노조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으로 선진국들은 대표성 있는 교섭창구에 대한 보완 규정을 두고 이를 허용하고 있다.
이런 제도 시행을 13년째 막아 놓은 노동계가 또 미루라는 행태는 글로벌 경제체제 하에서 우리나라만 시대를 역행하는 꼴이며,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들이 해마다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결같이 최하위를 기록하는 노사관계가 선진화되지 않는다면 경제위기를 벗어나기도 어려울 뿐더러 회복 후에도 다시 도약하기 힘들 것이다.
양대 노총은 이미 정립된 노·사·정 대화틀을 무시하고, 새롭게 한국노총·민주노총·정부·경총·대한상의·노사정위가 참여하는 6자 대표자 회의를 제안했고, 29일 노사정 6자 대표자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에 대하여 태도 변화를 요구하며 총파업으로 위협하고 있음을 볼 때 이런 대화는 과거에도 그리했듯이 강성 투쟁을 위한 명분 쌓기용이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정부는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내년 1월 시행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경영계는 복수노조를 허용하려면 창구단일화를 전제로 해야 하며,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은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동계는 복수노조는 허용하되 창구 단일화는 안되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은 삭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호간의 입장 차이가 극명한 상황에서 대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화의 틀보다 중요한 것은 의미 있는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다.
과거처럼 제도 시행을 유예하라는 억지 주장만 되풀이한다면 대화는 시간낭비일 뿐이다.
이제는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보완책을 찾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시행되면, 노조 전임자의 월급은 조합비에서 보전해주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조합비로 전임자 1명의 임금도 충당하기 어려운 조합원 300인 미만 단위노조가 전체의 88%나 되는 우리나라 노동환경에서 조합원수에 비례하여 지나치게 많은(일본의 4배, 유럽의 10배) 유급 전임자 수의 조정에 관한 논의가 무엇보다 우선되야 할 것이고, 노조 전임자의 노조업무 활동시간(근로자의 고충처리, 단체교섭 시간 등)을 규정하고 이 시간의 활동을 유급으로 인정하는 타임오프 문제, 복수 노조 허용으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할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 등에 논의가 모아져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대 노총이 강성 투쟁에 나선다면 국민들에게 지지를 얻을 수 있겠는가. 노사관계가 불안하면 이제 조금씩 회복하는 경제에 찬물을 끼얹게 되고 결국은 기업경영을 악화시켜 고용이 줄고 근로 조건이 악화돼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근로자와 취업 희망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양대 노총은 현실을 직시하여 정부와 재계와 열린 자세로 대화에 나섬으로써 노사 선진화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