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열리는 시민공개강좌 형식의 모임이 있다. 제도권의 한학은 아니나 유가의 말씀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우리나라 상고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사상과 철학을 아울러 총합하는 시도로써 야산 이달선사가 제창한 홍역학을 표방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이 단체에서 진행하는 강의와 강좌를 참여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잊고 살았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로부터 배운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느끼며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바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이곳에서 강좌와 공연을 곁들인 춤판이 있었다. ‘80년대 거리의 춤꾼’이라는 이 애주 서울대교수와 함께 우리문화를 걸출하게 표현하는 대가 들이 모여 판을 벌렸다. 서로 이질적인 문화적 표현 요소들이 따로 있으면서도 ‘신명(신바람)’ 을 통해 하나가 되어 돌아온다.
우리말에 ‘신명 난다’, ‘신바람 나다’ 등의 말들이 사용되어진다. 유심히 생각해 보니 흥겨움에 서로 막힘없이 소통이 잘된다는 의미이다.
예나 지금이나 삶의 방식은 차이가 있지만 살아가면서 처한 갈등요인들은 대동소이 할 것으로 보여 진다. 그럼에도 이전에 비해 현대로 오면서 갈등이 많아지고 이해의 폭이 좁아지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춤판을 지켜 보면서 우리는 전통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 공동체의 ‘신명’이라는 집단적인 소통구조를 선택한 것으로 느껴졌다.
대표적인 것이 지방마다 있는 탈춤이나 지역과 나라를 위한 대동굿 또는 지역마다 특색 있는 놀이 형식 이었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 지친 이들의 아픔과 위로를 대신하고 기쁨도 감싸 안아 마을마다 판을 벌렸을 것이다. 마을의 신명한 판들은 개개인이 속한 가족이나 집단 혹은 국가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마음을 모으고 나누는 자리였을 것이다.
‘신명’이 일어날 때는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던 일들도 마음이 열리고 막힘없이 소통되며 이심전심 되어 역동적인 힘이 창조되어진다. 우리는 근대화 혹은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과거의 흔적들을 지워 왔다. 뒤돌아 보면 삭제되어진 우리문화의 공백은 현대적인 의미의 갈등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메워 왔다. 개인과 집단의 신명이 어우러지며 이해와 지지와 양보를 이끌어 냈던 과거의 방법들은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곤 했다.
최근 우리사회의 여러 곳에서 소통되지 않음이 가슴알이가 되어 무기력하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렇다고 심란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간적인 ‘마을의 놀이판’도 없다. 여럿의 마음들이 이리저리 떠돈다. 소소한 갈등이 쌓이고 있다. 사회적인 큰 갈등도 쌓이고 있다.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신명’을 복원할 수 있는 토대가 새롭게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기존은 마을을 중심으로 한 판이 열렸다면 이제는 온라인에서 마을을 대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신명’을 끌어 올린다. 크고 작은 공동체에 대한 실험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다양한 시도들은 막힌 공간을 뚫어 새로운 소통을 여는 길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사회는 이제 까지 따라가야 할 이상적인 사회상을 서구의 선진국에 맞추고 있었다. 정신없이 앞 만 보고 달려오며 우리가 갖고 있었던 귀한 것들을 서구의 잣대로 재단하며 가위질하였다. 그러나 되짚어 보면 우리가 품고 있던 신명을 현대적 의미로 복원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아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는 우리 스스로 이상적인 사회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80년대 거리에서 춤을 췄던 이애주 교수의 춤판은 그래도 공간이 열려, 여러 사람들이 함께하고 길거리를 메웠다. 암울했지만 길은 열려 있었다. 20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은 지금, 우리에게 길은 열려져 있는가 되집어 본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이질적인 심리상태로 만들었는가 되짚어 본다. 도대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상은 있기나 한 것인가?
꼬일 대로 꼬인 우리 마음을 풀어줄 제대로 된 ‘신명난 굿판’이나 한번 벌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