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제1단 제12연대가 북한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동평양의 선교리(船橋里) 로타리에 진입한 것이 1950년 10월 19일 오전 11시였다. 국군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서울을 수복(9월 28일) 한지 21일 만의 평양 탈환이었다. 그러나 북한군은 이날 대동강을 가로 지르는 유일한 인도교인 대동교를 폭파함으로써 대동강에 있는 다른 2개의 철교까지 모두 파괴되고 말았다. 이날 제12연대는 진천-선교리 진격에서 적군 1381명을 사살하고 387명의 포로를 잡았는데 아군 피해는 전사자 2명뿐이었다.
이와 별도로 제15연대 직할대는 14시 10분 평양비행장을 점령했고, 16시 45분에는 대동강을 도강하여 모란봉에 진출했다. 이로써 국군 제1사단은 제11연대, 제12연대와 함께 동평양을 제15연대는 본평양을 점령함으로써 제1사단에 부여된 동평양 탈환, 동평양 비행장 확보, 본평양 배후 돌파 임무를 모두 마쳤다. 20일 오전 평양시내가 평온을 되찾게 되자 이날 오후 국군 제2군단장 유재흥 소장과 제7사단장 신상철 준장이 화신백화점 3층에 마련된 연대 지휘소를 방문하고, 연대가 노획한 군마(軍馬)를 타고 평양 중심가를 순찰했다. 정부와 유엔군사령부는 10월 30일 평양시청(평양시인민위원회)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 입성 환영행사를 갖게 되는데 이 자리에 이승만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나의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만고풍상을 다 겪고 39년 만에 처음으로 대동강을 건너 평양에 들어와서 동포 여러분을 만날 적에 나의 마음 속에 있는 감상을 목이 막혀서 말하기 어렵습니다. 40년 동안 왜정 밑에서 어떻게 지옥생활을 했던가를 생각하면 눈물이 가득합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신세계 신국가를 만들어 신생활을 하겠다는 결심을 남녀 동포가 다 같이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싸워서 피를 흘리고 자유독립국을 세운 것이니 통일된 백성의 기상과 외도를 잊지 말고, 또 남이니 북이니 하는 파당심을 다 버리고 공산당이 발붙일 곳 없이 해서 우리의 자유를 침해치 못하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바람은 좌절됐다. 통한의 벽은 언제 무너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