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제가(春秋諸家)는 글을 피륙의 씨와 날에 비겼다. 글은 실의 종횡이 호응해 피륙이 되듯이, 문의(文義)에 맞게 글줄을 짜 맟추??때문이다. 이인로는 ‘파한집(破閑集)’에서 “세상 일 중에서 빈부와 귀천의 구분을 정할 수 없는 것은 오직 문장 뿐이다. 비천한 선비도 무지개처럼 찬란한 빛을 발휘할 수 있고, 문장은 일정한 가치를 지니므로 부(富)로써 그 가치를 경감시킬 수 없다”고 하였다. 사족을 달면 유식자의 글도 그와 같다는 뜻이다. 엊그제 정수자 시조 시인의 신작 시집 ‘허공 우물’을 받았다. 일상의 버릇대로 주제시를 읽었다. “부답의 매일 끝에 시 한 편을 건져들고/ 이명과 대작하듯 제 메아리에 제가 취하는 // 밤이다/ 허공 우물에 목을 길게 드리우는 // 문병마냥 다녀오던 노모의 빈 방께로/ 어둠도 혼자 고이는 고아 같은 밤이다/ 마음이 풍덩 풍덩 빠지는 폐가의 우물 같은 // 그리는 그만큼씩 다 별되는 건 아니라도/ 부르는 그만큼씩 더 빛나는 건 아니더라도 // 밤이다/ 되삼키는 이름에 은하강도 붉게 젖는” 이 시는 어쩌면 시인의 인생 편력을 집약한 것이 아닌가 싶어 가슴에 와 닿는 것이 많았다. 시인은 얼마전 노모를 잃었다고 들었다. 사별은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누구도 대신해주지 못하는 것이 어버이를 잃은 고자(孤子)의 대역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필자가 문인협회 지부장 시절이니까 20년은 족히 지났다. 그녀는 1984년 세종승모제전 전국시조백일장에서 장원하면서 등단했다. 금값 나이 스물곱살 때다. 그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학문에 몰입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따고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으니 입지전적 여류라 할 만하다. 우리 곁에는 시인이 많다. 그러나 별로 읽을만한 시나 시조가 없다는 말도 아주 없지는 않다. 정수자 시인의 이번 시집은 ‘저물녘 길을 떠나다’, ‘저녁의 뒷모습’에 이은 세 번째다. 등단 25년 만이니까 과작(寡作)이다. 다작(多作)에 비하면 그렇다. 그러나, 큰 그릇이 늦게 만들어지듯이, 정제된 시가 시간을 포식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