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무책임한 사람이 승리한다. 허풍의 크기가 당선의 가능성에 비례한다. 좀 지나친 표현이지만 현실적으로 수긍가는 부분도 있다. 과거 흑백달력 한 장에 국회의원들의 근엄한 사진이 벽에 붙어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경상도 어느 지역에 야당 출신으로 국회의원 3선(三選)을 한 분이 있었다. 나중에 비례대표로 2선을 했으니 장장 5선 의원인데...
참으로 넉살이 좋은 분이었다. 유세 때 “날 보고 국회의원 하면서 돈 많이 모았다고 모함을 하는데,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사람과 기업인들 모두 큰 도둑입니다.(그 당시 김지하 시인이 오적을 발표해서 서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던 때다.) 그런 사람들 돈 좀 뺏어서 고향분들 고기도 사주고 술도 사주는 게 의협(義俠)이라고 할 수 있지...” 박수가 엄청나게 나왔다.
유세장 발언을 듣고 좀 배운 사람들이야 혀를 쯧쯧 차면서 어떻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저런 막 말을 하는지, 참으로 무식한 사람이다. 이렇게 깎아 내렸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호박씨 까는 세상에 정말 솔직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표를 몰아줬다.
청량리에서 2등칸으로 출발해 선거구가 가까워지면 슬며시 3등칸으로 옮기면서 “국회의원이 무슨 벼슬이라고...” 선거의 달인(達人)이라고 불려졌다. 물론 법안발의(法案發議)는 5선을 하면서 한 건이 없었지만(아직까지 기록이 깨지지 않았다고 함.) 그 대신 사람 모이는 시골 장터 같은 곳에서 막걸리로 얼굴 불쾌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고, 국회 회기 중이라도 대소사(大小事)엔 꼭 참석했다.
지금처럼 시민단체에서 입법활동과 출석률 등을 엄격하게 점수로 평가한다면 낭패볼 일이지만 3선의 고지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처음은 기대감으로 두번째는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고 세번째는 식상(食傷)해서 떨어트려 버린다.
검붉은 얼굴에 커다란 체구를 유세장 단상에서 넙죽 큰절을 하고, 하여간 동갑이라도 초면에 형님, 누님이었다. 선거에 출마한 사람은 제정신이면 떨어진다고 했다. 나이 서른 몇에 검찰총장을 지내고, 법무부장관을 지낸 K씨 누이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동생인 줄 알았는데 유세장에서 만난 동생이 누님을 몰라보고, 손을 잡은 채 한 표 부탁합니다” 하면서 진지하게 부탁해 집에 와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얼마전 우리에게 대쪽의 인상을 준 이회창 총재가 “시장에서 금방 나오는 순대가 시간 절약하는데 최고”라며 “끓여 먹는 찌개나 매운탕 종류는 선거에 비효율 음식”이라고 했다는 기사와 함께 순대를 먹고 있는 사진을 보고 귀티 나는 양반이 저 정도이고 보면 “선거는 참 무섭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삼 전대통령이 야당총재를 하던 시절, 낙선한 사람이 김 총재에게 전화를 했다. “선거에 전부 훌훌 털어 놓고 전화 한 대 겨우 남았을 정도로 노력했는데 죄송합니다” 했더니, 옆에 있던 참모들에게 “그 사람 마지막 전화 한대까지 팔아서 선거 운동했으면 당선됐을 텐데... 아직 전화가 남았다는 걸 보니 정신 못 차리는구먼”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선거에 낙선한 사람에게 웬만해서 중책을 맡기지 않았다고 한다. 몇십만 되는 선거구민 마음도 못얻는 사람에게 어떻게 감투를...
수원은 재선거 때문에 열기가 뜨겁게 지나갔다. 길을 지나다 보면, 각 당 대표되는 사람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아는체를 한다. 그런데 ‘눈감고 아웅’한다지만 긍정적인 면이 매우 크다.
민심을 아는 기회가 선거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항산(恒産)이 항심(恒心)이란 무서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유권자는 무서운 법이다. 건국후 이제까지 절묘한 여·야의 배분, 그리고 각 당의 추천 인물 가운데 교만하거나 사리를 챙기는 사람은 재선의 문턱에서 주저 앉았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옷깃을 여미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얼마전, 초등학교 학생회장이 되는 법을 인터넷에서 연설문과 함께 소개했는데 “칠판의 분필을 딱 부러트리면서 이처럼 똑! 부러지는 회장이 되겠습니다.” 선거의 기술 하나는 똑 부러지게 가르친 셈이다. 투표는 권리일까, 의무일까? 선거는 기술일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