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7일)가 입동(立冬)이었다. 24절기의 19번째 절기로 상강(霜降)과 소설(小雪) 사이에 있다. 글자 그대로 겨울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겨울이 되면 간절해지는 것 가운데 하나가 뜨끈한 온돌이다. 우리나라의 온돌은 고구려 때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는 흑룡강 지방의 항이 남으로 전해진 것이라고 하는데 온돌문화가 한반도 남녘 끝까지 퍼지기까지는 수천년이 걸렸다. 온돌이 생기기 전인 18세기 전후까지만 해도 우리 민족은 대청같은 마루에서 살았다.
온돌이 도입된 초기에는 온돌은 머슴이나 하녀 등 이른 바 아랫것들이 쓰고, 지체 높은 양반들은 대청마루를 썼는데 후대에 오면서 양반은 온돌, 아랫것들은 대청마루로 쓰임새가 바뀌었다. 온돌은 방고래와 구들장으로 구성되는데 방고래는 아궁이에서 굴뚝쪽으로 갈수록 약간씩 높아지고, 구들장 위의 진흙 두께도 약간씩 얇아진다. 이것은 방을 골고루 따뜻하게 하기 위한 지혜였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온돌방은 사면이 흙벽이고, 천장과 바닥도 흙장이었다. 우리 선조들이 흙을 고집한 이유는 우리 풍토조건과 맞아 떨어지는 과학적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흙은 열을 차단하는 단열효과가 높다. 삼복 더위에는 서늘하고, 삼동 추위에는 냉기를 막아 준다. 뿐만 아니라 흙은 흡습력이 매우 강해서 방안의 습도가 높을 때는 습도를 낮추어 주고, 습도가 낮을 때는 머금었던 습기를 뿜어내어 항상 쾌적한 습도를 유지시킨다. 주거문화가 아파트로 바뀌면서 이젠 온돌을 보기 어렵게 됐다. 어쩌다 시골에 가면 재래식 온돌을 만날 수 있는데 다소 불편하기는 해도 온돌에서 자고 나면 몸이 한결 가볍고, 머리가 맑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
10여년 전 뉴욕의 한 백화점에서 교포들을 겨냥해 미니 온돌을 개발 판매한 일이 있었는데 그 뒤 소식은 모른다. 아랫목을 차지하고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구둘더께’라고 했는데 옛말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