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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가을 편상(片想)

 

동창회 모임엔 주먹을 불끈 쥐고 교가(校歌) 한 소절(小節)을 불러야 속 시원하듯, 10월의 끝자락은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한곡조 뽑아야 가을을 마무리하는 기분이 든다.

시월의 마지막 날, 헤어짐이 아닌 참으로 소중한 만남을 가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연을 지닌 지인(知人) 3명이 만났다.(모두 개성이 출중(出衆)한 사람들이다) 한 명은 요즘 말로 범생(範生)중 범생(範生)이었다. 참으로 반듯하며, 자기정리가 매우 잘 된 사람이다.

우리 때는 가정이 별로 여유가 없고, 머리가 좋은 사람은 상고(商高)를 택했다. 상고 졸업생들은 대부분 첫 직장으로 은행을 택하는데(본인은 결코 그런 말 없지만), 대졸과 고졸의 차이가 여러 면에서 섭섭하고 또 은행이란 곳이 장래의 뜻을 담기엔 뭔가 그릇이 작은 것 같아 일반 대학에 입학해서 방위병으로 근무하는 도중에 행정고시(行政考試) 합격통지서를 받는다. 옆에서 보기엔 승승장구(乘勝長驅)했다고 할 지 모르지만, 얼마나 많은 불면(不眠)의 밤을 보냈을까?

중앙부서 차관(次官)을 지낸 뒤 세계적이라 할 수 있는 큰 반도체기업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각고의 노력(스스로 연봉을 35% 삭감하는 등)탓에 알찬 회사로 변모하고 있다. 자리를 함께 한 부인 왈 “매사 원칙을 강조해서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라고 불평하지만 그를 쳐다보는 눈엔 무궁한 신뢰가 깔려 있었다.

자식이 둘 있고 보니 고승(高僧)은 아니고... 스캔들 근처도 가질 않았다.

또 한 사람, 일족(一族)인데 직접 동문(同門)관계는 아니지만 누님과 동기(同期). 말 끝마다 누나 이름을 부르면서 “○○동생이 건방지게...” 이렇게 말하면 “뭐 1년 가지고, 항렬(行列)로 합시다! 항렬로”(참고로 내가 할아버지 벌이다) 만날 때 첫 인사가 이런식으로 티격태격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나이 50에 독립해 착실한 중소기업 대표로 변신했다. 하도 경우가 바르고 남이 허튼짓을 하면 절대로 용납을 못하고 따끔하게 지적을 해서 별명이 독사(毒蛇), 물리면 죽는다! 이 정도는 아니고 걸리면 땀 좀 뺀다. 이런 뜻이다.

그러나 남에게 사소한 배려(配慮)가 지극인 사람이다. 좀 잘난체 하는 사람에겐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상대방을 무안케 하나, 어려운 사람에겐 이해가 무한대(無限大)다. 그러나 원칙이 무너지는 시대에 특히나 두루뭉술한 게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고 남의 탓을 가급적 외면하는 요즈음, 따질 건 따지는 사람!

사회란 벌판에 이런 독사가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닌가? 뾰족한 표현도 바탕에 진정(眞正)성이 없거나 주관적이면 외면당하지만 유머와 함께 기술적으로 전하는 충고는 참으로 유익하다. 호오가 분명한 사람! 배울 점이다.

또 한명 그는 천재(天才)다. 떡하니 서울 명문고등학교에 합격한 뒤 언변도 좋고 인물도 당당하고 전혀 시골학생 티를 내지 않고 자신만만한 고교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대학시절에 이미 대입학원 명강사로 이름 날렸는데 그 짭짤했던 수입은 친구들을 위한 청춘의 객기로 탕진(蕩盡)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시효가 엄청나게 흘러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아쉬울 뿐이다.

지금은 영민(英敏)한 사업가로 주위의 부러움을 받는다.

대통령 해외순방 때 수행기업가 명단에 그의 이름이 가끔 들어가 발견할 때마다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30년 전쯤, 제 각기 살길이 바빴지만 일년에 2번쯤은 반드시 얼굴을 마주할 때가 있다. 추석과 구정,청량리역 앞이다.

명절에 고향갈 때, 기차를 타고 5시간을 달려가야 했다. 시계탑 앞에 모여 저마다 집에 가져갈 선물 꾸러미를 하나씩 들고 “인사해, 내 마누라야” 참으로 어슴푸레하고 어두웠던 흔적을 서로 놀리면서 유쾌한 고향 길! 기억의 흔적들! 지금은 도저히 꿰맞출 수 없다. 그리고 “계란이요~” 하는 홍익회 판매원 목소리. 맞아! 삶은 계란이던 시절이었다.

모두 머리숱이 듬성한데 그 가운데 비교적 내가 아직은 빽빽했다. 고민하지 않는 삶의 증표(證票)라 할까? 그럼 그네들에게 듬성한 머리는 성실함과 부지런함과 성숙함의 댓가인가? 어찌됐든 일주일이 지났지만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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