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가 최근 ‘친일 인명사전’을 공개해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친일청산 문제는 반민특위 해체 이후 현재까지 유야무야된 상태이고 매국노로 분류된 인사의 후손이 국가가 압수한 땅을 되찾겠다고 당당하게 소송을 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역사학계에는 친일학자의 영향을 이어받은 제자들이 아직도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친일청산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64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친일파 후손들이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이 됐기 때문에 친일문제를 거론하는 행위는 암묵적인 금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친일문제의 연구 성과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임종국 선생이 1966년 발간한 ‘친일문학론’은 최초의 실증적 친일 연구서였다. 그는 친일세력들의 각종 압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 재산과 인생을 친일역사 연구에 바쳤는데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그 흔한 화환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니 이 작업을 하면서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었는가를 알 수 있다. ‘친일문학론’은 이번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의 뿌리인 셈이다.
이 작업은 정부의 지원금 중단 등으로 큰 진전을 보지 못하던 중, 2004년에 일어난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성금운동’이 누리꾼들의 큰 호응을 얻어 7억여 원에 달하는 편찬기금이 조성됨으로써 지속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 일제시대 식민지배에 협력한 4천389명의 친일행각이 기록돼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혹자는 말한다. “당신이 일제 시대에 살았으면 친일행각을 안했을 것 같은가?”라고.
사실 일제 강점기에 창씨개명과 신사 참배를 거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힘없는 민초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창씨개명을 하고 신사참배를 한 것과 소위 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서 적극 협조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밝혀져야 할 것은 밝혀야 한다. 이런 점에서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은 분명히 의의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일제시대는 이미 지나간 역사다. 지나가 버린 역사로 인해 민족 내부에서 대립이 지속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바람직한 것은 국가와 민족에게 사죄할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이제라도 나서서 사과하고 국민들은 이를 받아들여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