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자주 다녀본 사람들은 항상 소화제 등 상비약을 지참하고 다닌다. 그러나 이런 구급약을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외국에 나갔다가 몸에 탈이 나게 되면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일본이나 미국에 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은 뜻밖으로 의약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데서 놀라게 된다. 즉 소화제나 파스류, 간단한 감기약 등을 약국이 아닌 일반 슈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의약품 판매가 약국에만 한정돼 있는데 가진 일본의 이런 조치는 의외였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동네 슈퍼에서 소화제나 피로회복제 드링크류, 파스, 진통제 등 의약품을 파는 곳이 있다. 물론 불법이다. 하지만 약국이 너무 멀거나 밤이 깊어 약국이 문을 닫은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몸이 아픈 동네주민들의 요구를 슈퍼주인이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 약품은 별도 조제가 필요치 않기 때문에 큰 위험성도 없어 그동안 큰 사회문제가 되어 오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부가 ‘의약 부문 서비스 선진화’를 추진하면서 일반의약품(OTC)의 약국 외 판매와 영리법인 약국을 허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2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전문자격사 시장 선진화를 위한 공청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고 공청회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강력히 추진할 방침이라고 한다. 당연히 일부 약사들은 의약품 오남용이 생기며 영리법인 약국 허용으로 대자본에만 혜택이 돌아간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부 용역을 맡은 KDI는 ‘일반약품의 약국 외 판매 허용 여부와 관련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국민이 자주 찾는 약품을 일반 소매점에서 판매할 수 있게 하는 추세’라며 우리나라만 예외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도 1998년 4월 일부 의약품의 소매점 판매를 허용한 뒤 2004년부터 그 범위를 확대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10만개 이상의 제품이 약국, 편의점, 주유소, 슈퍼마켓에서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약사들의 주장도 정부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국민들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다면 그냥 현행대로 하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유효성과 안전성이 확인된 일반의약품들을 분류해 약국 외의 편의점이나 슈퍼 등에서 팔게 하면 된다. 약국외 판매로 결론이 날 경우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해 의약품 분류를 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