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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年號

이창식 주필

연호란 군주국가에서 국가 원수가 자기의 치세연대(治世年代)에 붙이는 칭호를 말한다. 다른 말로 대연호(大年號), 원호(元號)라고도 하는데 처음 사용된 것은 기원전 140년 한(漢)나라 때였다. 이후 신라·일본·발해·월남 등이 본땄다. 연호의 명칭은 대체로 정치적인 이상을 나타내거나 상서로운 현상 또는 고전의 글귀를 인용해 제정하는 것이 관례었다. 연호 원조국인 중국에서는 명나라 이후 1세1원(1世1元)의 원칙을 따랐고,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경덕왕 이후 조선 말 대한제국이 되기까지 고유의 연호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연호를 사용한 것은 536년(신라 법흥왕 23) 때로, 한무제(漢武帝)의 연호 건원(建元)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 후 진흥왕, 진평왕, 선덕여왕, 진덕여왕 때까지 독자적인 연호를 썼지만 649년(진덕여왕 3) 당나라 태종이 신라의 독자 연호 사용이 부당하다 하여 다음 해부터는 당나라 연호인 영휘(永徽)를 썼다. 822년(현덕왕 14) 김헌창이 장안국을 세우고 연호를 경원(慶元)이라 하였고,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연호를 영락(永樂)이라 하였다. 904년 건국한 궁예의 태봉국은 건국 초부터 연호를 사용하였으나 4차례나 바꿨다. 918년 고려 왕건이 등극하면서 연호를 천수(天授)라 했고, 950년 광종 때 광덕(光德)이라 하였으나 한때 준풍(駿豊)으로 고쳐 부르기도 하였다. 조선은 처음부터 명나라의 제후국임을 자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연호를 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고종 말기인 1896년에 비로소 건양(建陽)이란 연호를 쓰게 되는데 바로 이때가 일본의 내정간섭이 시작되는 시기로 중국의 속국개념이 희석된 탓이었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동한(東漢)을 중흥시킨 광무제를 연상하여 연호를 광무(光武)로 제정하였다.

그러나 그도 잠시 1907년 7월 고종 말기에 연호를 융희(隆熙)로 바꾸고, 그 해 순종이 등극했지만 1910년 8월 22일 조선은 일본에 합병되면서 나라와 함께 연호도 사라졌다. 조선의 연호는 비극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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