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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B와 D사이의 C

 

한국의 처녀·총각들과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외국인 숫자가 모두 26만명 조금 넘는다고 법원행정처가 발표했다.

미국인 사위가 7만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본, 중국, 캐나다, 독일 그리고 며느리는 중국, 베트남, 일본, 필리핀, 미국 순이다. 모두 26만명이라는데... 육지속의 섬이라는 경상북도 영양의 인구가 1만9천명이고 보면 이 숫자는 작은 군(郡) 14개를 만들 수 있다.

요즘이야 다문화가정(多文化家庭)이라고 그럴 듯 하게 말하지만 옛날에는 혼혈가정(混血家庭)이란 표현을 했다. 초등학교때 기억나는 일본 말로는 노리까이(のり換える에서 온 말)와 아이노꾸(間の子)가 있다. 기차를 바꿔 탄다는 의미의 ‘노리까이’는 어른들로부터 주워 들은 것이고, 혼혈아를 의미하는 ‘아이노꾸’는 어디서 배웠는지 모른다.

혼혈아, 우선 외양에선 눈이 파랗거나 머리가 노랗거나 피부색이 검으면 우리 시대에는 경멸의 대상이었다.

혼혈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박진주(朴眞珠)라고 한국 이름을 짓고 미국 역사상 여성으로서 최초로 노벨문학상(1938년)을 받은 소설가 펄벅(Pearl Sydenstricker Buck·1892~1973)여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의 한국사랑은 대단해서 죽기 전에 한국도 방문하고, 지금도 부천시 심곡본동에 펄벅 기념관과 문화재단이 있다.

‘새해’란 책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주인공은 주지사 출마를 예정한 인기있는 정치인. 부유한 집안, 아름다운 아내, 대중의 인기.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젊은날 부인과 결혼한지 3개월만에 한국전쟁에 참여하기도 한 그는... 어느날 한 통의 편지가 부부의 삶을 뿌리 채 뒤흔든다.’

생사를 예측할 수 없는 전장의 댄스홀에서 다른 여자와 달리 수줍고 말없는 여자, 순이(책에서는 슈니야)를 사랑하게 됐고 아이가 태어났다.

돌아가겠다고 하고 약속했지만 엄연히 미국에 아내가 있는 몸. 편지 내용은, 아기가 소년이 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현숙한 아내는 충격을 받았지만 혼자 아이를 만나러 간다. 주인공은 네 사람인 셈이다. 아들을 낳았으나 버리고 더구나 존재조차 잊어버린 남자, 남편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 하염없이 떠나간 남자를 그리워하는 순이! 한국에서는 미국인, 미국에서는 한국인... 어디서든지 손가락질 받는 아이는 영원한 이방인.

순이는 이렇게 울며 말한다. “한국에서 아이는 아버지의 책임입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혈통도 없는 셈입니다. 아예 존재마저 없는 아이가 돼 버립니다. 학교에 가지도 취직도 못합니다. 아버지가 있어야 출생신고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차여차해서 결국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와 유세장에 함께 간다. “친애하는 여러분! 이 아이가 제 아이입니다. 아내가 한국에 가서 우리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 아이의 목소리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얘야, 노래 한곡 불러다오.”

지금은 통속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당시 상황에서 정말 제대로 짚은 소설이다.

순이의 울부짖음이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혼혈아를 보면 비아냥댔던 기억이 있으니... 어디 우리나라뿐일까? 아메라시안(America와 Asian의 합성어), 미국사람과 아시아계의 혼혈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는데, 이 혼혈아라는 말 자체에 차별적 요소가 있다.

어디 대안적 단어는 없을까? 아주 가까운 대학교수 한 분에게 딸 둘이 있다. 캐나다에 혼자 몸으로 그것도 스스로 개척해서 유학을 다녔던 참한 규수다.

혼처도 소위, 떵떵한 곳으로부터 많이 들어왔는데 어느날 “저 결혼 할 거예요. 캐나다 유학 갔을 때 친구인데...” 이름은 ‘스캇’이라고 했다. 솔직히 좀 놀랬으나 “축하한다. 언제 ‘스’서방과 식사할 기회나 주려무나.”

나중에 어떤 책을 보았더니 사르트르가 멋진 말을 했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이다. B란 탄생(Birth), D란 죽음(Death), C란 선택(Choice).

삶과 죽음에는 수많은 선택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선택은 자유이자 책임이다. 이 말을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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