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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부자의 조건

 

1997년 IMF금융위기 이후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가장 큰 덕담으로 자리 잡았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물화(物化)의 극단적 현상으로 치닫는 것 같아 씁쓸함이 느껴진다.

부자(富者)! 살펴보건대 예부터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돈 만지는 직업을 가장 천직으로 간주한 시대도 있었다.

요즘 세태로는 말도 안되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기준이지만 그 순서의 기준에는 ‘정직’이 자리잡고 있다.

‘장사꾼이 이문을 안남기고 본전에 판다’, ‘노처녀가 시집을 안간다’는 앙탈이, 그리고 노인들이 ‘빨리 죽어야 하는데...’ 이런 넋두리, 오죽하면 불변의 3대 거짓말이라고 했을까?

이 가운데 장사꾼의 거짓말이 으뜸이니... 부자하면, 최인호 선생이 쓴 상도(商道)의 임상옥과 경주(慶州) 최 부자가 언뜻 떠오른다.

조선 후기 무역상 임상옥은 물론 최 선생의 소설가적 구상으로(반드시 사료에 의한 건 아니지만) 장사의 도(道)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준다.

이 소설에 참 좋은 말들이 많이 나온다. 현자(賢者)는 모든 걸 배우는 사람, 강자(强者)는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 부자(富者)는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

우리가 덕담으로 건네는 ‘부자 되세요’ 인사와는 거리가 멀다. 마을 최고의 부자가 담 넘어 하인집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를 욕심내는 건 가난함이요, 부자의 너른 전지(田地)를 부러워하지 않는 하인이 진정 부자라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동서고금(東西古今)에 두루 상통하는구나.

소설에서 임상옥은 죽기전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모두 환원하고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이런 알 듯 모를 듯한 교훈을 남겼다. 평생 돈을 쫓는 사람, 사람을 좇는 사람 두 가지 인물을 대비시키는 절묘함을 보였는데 임상옥은 두 가지 모두 갈구하는 구도자적 자세로 일관한다.

요즘 말로 하면 윤리경영과 인재제일주의, 표현이 좀 뭣하지만 경제인의 신철학(新哲學)이라 할까?

‘상도’는 신문에 3년간 연재되었고, TV드라마도 아주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으로 알려졌으니 이만하고...

부자란 모름지기 겸손해야 한다. 겸손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타인을 초라하게 만들고, 따라서 존경을 받기는커녕 시샘을 받다가 끝내는 자신이 일으킨 재물에 의해 파멸된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라, 어디 한 두 명인가?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강한 정치적 힘도 10년 내내 유지한다는 건 힘들다는 의미다.

이와 비슷한 말로 부불삼대(富不三代), 부자가 3대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러나 경주 최 부자는 무려 30년 이상 부귀와 은총을 유지했다. 그것은 소위 재테크나 인맥관리, 정계와 돈독한 관계가 전혀 아니다.

가훈(家訓)이 비결이다. 과거는 응시하되 진사(進士) 이상은 하지 말아라, 권력이란 칼날과 같아 가까이 하지 말아라.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노사관계, 최씨 가문 사람들은 조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노비에게 지금도 제사를 지내주고 있다.

그 밖에 가슴에 와닿는 구체적인 가훈으로 흉년에는 재산을 늘리지 말아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참으로 대단하다. 타인에게는 덕과 궁휼을, 자신에게는 절제와 청빈을...

해방후, 경주의 집과 땅을 처분해 대구대학(영남대학 전신)을 만들었다. 내년부터 최 부자 댁의 가풍과 부자가 모름지기 취해야 할 태도가 드라마로 구성돼 방송될 예정이란다.

낯 뜨거운 사연의 연속극보다 아슬아슬한 맛은 없을 게 분명했지만, 부자에게는 반성의 옷깃을 여밀 기회를 주고 또 그렇지 못한 사람에겐 진정한 부자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으면...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가슴 따뜻하고 도리를 아는 부자를 만나고 싶다. 하여간 반가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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