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時節)과 관계 없이 가까이 하고픈 것 가운데 하나가 시(詩)다. 화사한 봄이면 꽃철이어서 좋고, 무더운 여름이면 정열을 느낄 수 있어서 좋고, 고즈넉한 가을이면 상념에 빠질 수 있어 좋고, 혹한의 겨울이면 긴장을 풀어줘서 좋은 것이 시다. 하지만 시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괴테는 말했다. “시를 이해하려면 시의 나라로, 시인을 이해하려면 시인의 나라로 가야만 한다.” 때 마침 최연식의 시집 ‘허름한 보폭 사이의 흔적’이 나왔다. 최 시인은 강화 태생으로 계간 ‘시인정신’ 신인상 수상을 통해 등단했다. 1999년의 일이니까 올해로 등단 10년째다. 그런데 이미 ‘문득 그대 그리운 날’, ‘내게 머문 눈빛 만으로’, ‘그늘 속에 잠들다’ 등 세권의 시집을 낸 바 있고, 공동시집으로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와 칼럼집 ‘도사님 거꾸로 가다’를 상재(上梓)했다. 최 시인은 한국작가회의 멤버다. 굳이 나눈다면 재야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주제시 ‘허름한 보폭 사이의 흔적’은 “삶이란 쉼 없이 내딛는 걸음 사이로 스쳐가게 마련이다”로 시작된다. “가고픈 대로 걸음을 옮겼던 시절은, 쓰린 상처와 예쁜 문신이 절반씩 차지하지만, 기울어지는 햇살에 얼굴 내밀고 헛기침하며 가던 걸음 쉬어야 하는 지금은, 문지방 넘는 가랑이 사이로 성난 회오리 바람뿐”(중략) “교만과 이기로 뜀박질한 청청한 날들이여 내가 주고 네가 남긴 모든 흔적을, 그러안고 널 애무하며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리고 또 사랑한다”로 끝난다. 얼마나 읽기 편하고 가슴에 와 닿는 시인가. 위즈위스는 “산문과 운문의 언어 사이에는 본질적 차이가 없고, 또 있을 수도 없다”고 했다. 최 시인은 언론인이다. 좀더 분명히 말하면 경기신문 사회2부(김포·강화 주재) 베테랑 부장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산문적 요소가 베어 있는 것 같고, 속도감도 있어 보인다. 루카누스는 “시인은 모든 것을 소멸로부터 구출하고 유한한 인간에게 불멸을 준다”고 했다. 최 시인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시인과 언론인으로 ‘만인의 희망’이 되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