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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追憶)

 

크리스마스가 눈앞에 다가 왔다. 모든 이들에게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이 몇 토막 있으리라. 총각시절엔 아기예수가 태어난 이 성(聖)스럽고 거룩한 날을 짝짓기 결선일이라도 되는 듯 모종(某種)의 엉큼한 작전도 짜고,그렇지 못한 패들은 술에 취해서 약간의 실수는 당연히 면제받은 날처럼 곤드레 만드레가 돼 아침에 숙취로 고생하고... 전날 광분(狂奔)의 기억을 더듬고는 부끄러워 몸서리를 치는데...

그러나 결혼하고부터는 아예 무덤덤해진다. 어쩌면 ‘가족과 함께’ 이 구호마저 부담으로 다가온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는 아직도 또렷이 떠오른다. 죽은 후 빈소(殯所)에 와 뜨거운 눈물 몇방울 흘리고, 그간의 사연 때문에 어떤 말도 찾지 못하고 삭이느라 멍하니 빈소를 지킬 친구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친구와 그 친구의 어머니와 얽힌 이야기다.

친구 가운데 셋째라고 이름 속에 석 삼(三)자가 들어간다. 아버지 생사를 알 수 없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지만 타고난 총명함과 지식에 대한 갈망이 남달랐다. 역사가 오래됐지만 고만고만한 지방중학을 졸업하고도, 그 어렵다는 서울의 명문고, 그리고 서울상대를 입학했다.

대학 4년을 가정교사로 버텼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형편이 못 되어, 스스로가 일어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풍파를 많이 겪었지만 밝다.

천성(天性) 탓이리라. 사람들은 제 각기 마음 속에 돌덩어리 하나씩 안고 살아간다. 높은 직책, 현명한 아내, 똑똑하고 착한 아이들... 부러울 게 없었지만 한사코 서울생활을 거절하는 노모는 결국 고향을 떠나지 않겠단다.

노인이라 은행출입이 힘들었다. 통장으로 생활비를 보내면 찾아서 갖다 드리곤 했는데, 돈 보내는 날이 일정하기 때문에 내가 가는 날은 여름이면 미숫가루, 겨울이면 식혜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셨다. 결코 빈 입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정결하신지라 방바닥을 얼마나 문질렀으면 마치 기름을 바른 것 처럼 반짝이며 윤기가 났다. 대학생 한 달 용돈보다 많이 드렸다. 참말로 효자였다. 그리고 꼭 예대(禮待)를 했다. 그때 이미 귀가 어둑어둑 하셨는데, 치매도 슬쩍 오고 남들이 보면 싸우는 것처럼 큰 소리로 물으시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혼자 몸 가누기가 힘들어도 한사코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걸 피했다. 결국은 이름만 그럴듯한 게 아니고 정말 그럴듯한 ‘평화의 집’이라는 곳에 모셨는데, “어메! 시원하지”, “어메! 이 고기가 연한데.” 하여간 목욕시켜 드리고, 옆에서 보기에 흐뭇함을 넘어 질투가 날 정도였다.

크리스마스이브, 그 친구가 외국출장 중이었다. 청춘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지만, 50과 60의 캐럴은 자못 스산하다. 지나간 청춘에 대한 아쉬움(?)...! 찬란한(?) 흔적에 대한 그리움일까?

아내와 ‘평화의 집’을 찾았다. 치매가 빠른 속도를 내서, 나를 자식으로 착각했다. 자주 오지 않는다는 푸념과 원망 그리고 어리광... 복잡한 심사였다. 얼굴을 부벼대고, 아내를 보고 며느리인 줄 알고 뭐라고 나무라시고... 이미 목소리도 가늘어서 말씀 내용을 짐작하는 수 밖에 없었는데, “몸 건강해야 한다” 대강 이런 뜻을 하염없이 되풀이 했다.

분위기가 솔직히 싫었다. 산골의 어둑함도 싫었고 조도(照度)낮은 형광등 불빛도 싫었고,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복도도 싫었고, 특히나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의 잔영(殘影)이 떠올라 싫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데 한사코 오늘 내 옆에서 자고 가야 된다고 우긴다. 참으로 낭패스러웠다. 결국 직원들이 나서서 붙잡는 노인네를 떼어 놓았는데 얼굴은 눈물범벅이고, 체중은 한줌도 안되는 듯 가벼웠다.

주차장에서 올려보니 창가에 붙어서 팔랑개비처럼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껏 참았지만 차안에서 진하고 낮은 오열을 했다. 눈이 빨개지도록...아내도 어깨가 들썩거렸다. 며칠 후 그 친구에게, “나는 다시 평화의 집 안 간다.” 이렇게 단호하게 말했다.

그날 저녁, 둘이서 소주 잔 꽤나 비웠다. 돌이켜보니, 허접한 청춘의 객기를 부리고 다녔던 크리스마스의 행적을 조금이나마 구제받을 수 있는 추억으로 기억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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