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도 말의 성찬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울고 웃고 때로는 고마워하고 또 짜증스러워했던 한 해였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김수환), “정치하지 마라”(노무현), “근원적 처방이 필요하다”(이명박), “키 작은 남자는 루저”(여대생)…. 2009년은 말없이 일만 하는 소의 해였지만 말로 시작해 말로 저물고 있다.
올해는 금융위기 와중에 우리사회의 양심이자 등불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하는 등 초대형 사건·사고가 잇따르면서 시대상을 반영하는 유행어가 쏟아져 나왔다.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전을 앞두고 김인식 야구대표팀 감독이 선언한 “위대한 도전”은 경제난으로 시름하는 국민과 나라 전체에 다시한번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이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고 사라지는 이슈의 홍수 속에서 인터넷 세상은 블로그와 댓글로 말을 신속히 실어나르며 ‘언어의 성찬’을 주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남긴 “미안해하지 마라.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끊임 없이 회자된다. 정권실세인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 8일 출입기자와의 오찬에서 한 “앞으로는 제발 ‘실세’니 ‘2인자’니 ‘힘 있는’ 이런 표현 좀 빼 주세요”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전국을 돌며 민원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경제분야에서는 이성태 한국은행장이 10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출구전략’을 묻는 질문에 “나갈 때는 헬리콥터로 들어서 나갈 수 없다. 적당한 시기에 빠져나가려면 문쪽으로 조금씩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9월4일 캘거리 국제기능올림픽 경기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좋은 부모, 좋은 선배 만나서 이 자리에 있다”라고 비교적 솔직한 말을 전했다.
올 한 해 논란의 핵은 “키 작은 남자는 루저”가 아닐까 싶다. 11월9일 KBS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 ‘키 작은 남자와 교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키가 작으면 일단 싫다, 180㎝는 되야한다”며 이렇게 던진 말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