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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긴 겨울밤 잠을 잊은 그대에게

 

나는 TV에서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직업들이 존재하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도마 썰기 달인이나 음식 손맛 고수는 당연하고, 전 부치기 달인, 가죽 땋기의 달인, 포장의 달인, 굴삭기나 지게차의 달인 등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수많은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달인들의 실력과 노력에 절로 경외심이 든다. 방송에서는 한 자리에서 최고 고수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노력하는 과정이 다 그려지지는 않지만, 세상에 어느 것도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그분들이 이룬 경지는 땀과 노력의 결실이라는 교훈을 얻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달인들에게선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남들이 어렵다고 포기할 때 수십 년 한결 같이 한 우물을 파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 매진하였다는 점이다. 또 남들이 보기에는 고되고 힘들어 보이는 일도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일해 온 분들이라는 점이다.

달인들은 대부분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을 사는 것 같다. 남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도 땀을 흘리고, 새벽별을 보며 퇴근하기 일쑤다.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쏟아 붓는 것이다. 달인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또 한 가지 공통점은 겸손함이다. 자신의 실력에 자랑하거나 교만하기는커녕, 열심히 하다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솜씨라며 소박하게 미소 짓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나 자신이 자만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한 분야에서 달인의 경지에 오른 분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였던 성공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왜냐면 달인의 경지라는 것이 단순한 손재주나 잔재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실하고 겸허한 자세, 감사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 일이십년 전부터 시작된 일이지만,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수급 불균형 현상이 매우 심각하다. 소위 화이트칼러 직장을 구하려는 젊은 구직자들은 일자리를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반면,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하다거나 기름 작업복을 입어야 하는 직장, 작은 중소기업들에서는 필요한 일손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소위 3D 업종이라 불리는 직장들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로 채워져 있다는 뉴스도 이미 오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오랜 속담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사농공상의 유교적 사상이 뿌리깊이 박혀 있어, 부모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던, 자식만큼은 판검사로 만들기 위해 벌은 돈을 모두 교육비로 쏟아 붓는 등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이나 독일 등 장인정신이 뿌리 깊은 선진국들에서는 소위 ‘가업 의식’이 강한 것 같다. 일본에서는 잘 나가던 대기업 직원이 고향에서 아버지가 운영하던 작은 라면가게를 이어받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낙향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이런 사람을 행운아로 여기며, 존경스럽게 바라본다고 한다.

연말연시나 명절, 휴일이 다가오면 오히려 더 바빠지는 분들도 떠오른다. 경찰, 소방관, 철도인, 군인 등... 내가 아는 철도인들 중에는 직장 생활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명절 차례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분들도 많이 있다. 휴일이나 명절이면 더 바빠지는 사람들 중 기자들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기자하면 권력도 있고 글이나 쓰는 ‘고상한’ 직업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다르다. 남들이 다 쉬는 날에 출근은 기본이고, 밤새 취재하고 새벽까지 기사를 쓰는 기자라는 직업은 3D 업종에 속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굳이 통계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국민들의 근로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자원도 자본도 없고, 면적으로 보면 세계에서 100번 안에도 못 드는 작은 영토의 대한민국이 세계 11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직업에서 최선을 다하고 달인과 고수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TV프로그램에서 만난 이들처럼 밤을 잊은 채,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건강한 달인들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인 동시에 밝은 미래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유달리 어려웠던 한 해를 보내며, 또한 어둠에 갇힌 긴 터널의 끝에서 빛나는 불빛에 다가가는 이즈음에 오늘도 긴 밤을 새우며 자신의 소박한 꿈을 위해 땀방울을 떨구는 수많은 달인들의 수줍은 미소가 새삼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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