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람들과 회의를 하다보면 참으로 우리네 관습과는 생소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회의 참가자 범위와 자격인데, 회의 도중에 자동차를 몰던 운전기사도 한마디 거들고 차를 나르고 비서처럼 보이는 여직원도 한마디 하고...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국가의 기본인 개인에 대한 존엄, 평등사상 때문이다.
그리고 많이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떤 현안에 대해 생각은 모두 똑같은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너서클(inner circle : 권력 중심부의 측근 그룹)을 잘 살펴보면, 아직도 여성들의 역할은 미미하다. 중국 건국후 첫번째 여성부총리라는 철(鐵)의 낭자(娘子)로 불리는 우이(吳儀)는 예외였다. 전족(纏足)을 채워 여성들을 물건 대하듯 한 중국에, 게다가 부모나 남편의 후광없이 실력 하나로 15억 인구의 지도자로 등장했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다.
얼마전 해외토픽에 누비바지 차림의 영락없는 시골 할머니의 쓰레기 줍는 모습이 사진에 실렸는데 ,고향인 샤먼의 공원에서 환경보호작업을하는 전 부총리 우이라고 설명했다. 정말 반가웠다. 올해 71세. 흰서리가 뽀얗게 내린 머리를 보면, 세월은 쇠(鐵)도 녹슬게 하는 모양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일본 고이즈미(전 총리)와 면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사건이다. 외교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고이즈미가 계속 신사참배(神社參拜)를 전몰장병에 대한 기본적 예의 운운하며 궤변을 늘어 놓으면서 다른 나라가 간섭하는 건 내정간섭(內政干涉)이라고 하자, 회담 몇 시간을 앞두고 일방적으로 취소한 사건이다.
그러나 훈령이나 지시에 의한 건 아니고 혼자 결정해 놓고 추인을 받은 사실이 더욱 강단(剛斷)있는 정치인으로 돋보였다. 그때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 철의 낭자란 말이 헛된 게 아니란 사실을 확인했지만, 중국의 국가경제가 환율 때문에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했을 때 중국정부는 우이를 단장으로 미국에 파견했다. 대국으로 커가는 중국의 싹을 자르자면 환율(換率)을 현실화가 가장 큰 무기라고 판단하고, 미국정부와 의회에서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당시 분위기는 살기등등 했다고 표현했다. 중국의 양보는 기정사실화 됐다.
중국 언론들은 제목 붙이기를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우이, 홍문연(鴻門宴)에 가다’ 홍문연이란 진나라 말기 항우가 유방을 죽이기 위해 음모 가득한 연회를 가리키는데...
죽음을 예측했지만, 당당히 승리하고 돌아왔다. 항공시장개방, 외국인투자 한도증액, 외국증권사개설 등 일본의 자본주의도입을 허락하되 환율문제는 지켰다.
결국 오늘 중국의 풍요로움에 우이도 큰 몫을 했다는 경제학자들의 분석도 있다. 회담이 끝난 뒤 미국 관리들은 “대쪽같은 원리원칙주의자지만, 엄청난 합리성을 가진 협상가”라고 칭찬을 했다고 한다.
지방시찰 중에 소위 눈도장을 찍으려고 간부들이 얼씬대면, “모두 물러서고, 농민들만 가까이 오라.”고 소리를 질러 농촌의 여성간부보다 훨씬 더 다가서기 쉬었다는 일화도 있다.
중국의 짝퉁생산을 빗대 중국을 좀도둑이라고 표현하자, 미국에 도착 즉시 개구일성(開口一聲)으로 “우리는 도둑과 교섭을 하러 왔다.
미국의박물관을 보라, 중국에서 약탈한 유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나이 70에 아직 결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낭만적 면모도 있다.
결국 사스(SARS)의 광풍이 중국전역을 강타했을 때, 이 무서운 전염병과 전쟁을 치르는 총지휘자로 우의를 선택하게 했다.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만큼 어리석은 건 없다. 만약 우리에게 우의가 없었다면! 그의 상관이며 포청천이라고 불리는 주룽지 총리가 한 말이다.
연말까지 계속되는 전직 여성총리에 대한 설왕설래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부총리를 물러날 때 고별사 제목은 “나를 완전히 잊어 주세요.” 그리고 남긴 말 가운데 “정치에서 말이 필요하면 남자를 찾고, 행동이 필요하면 여자를 앞세워라...” 국가가 위기에 몰렸을 때 필요로 하는 정치가! 흑과 백,구름과 하늘이 오버랩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