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의 끝자락인 29일 밤, 경기도문화의 전당에서 펼쳐진 이색적인 음악회는 감동의 자리였다. 이름하여 ‘마예 오현규 음악 50년 갈라콘서트’였다.
이날 음악회는 오현규의 음악 50년을 기리고, 다른 한편으론 오현규 음악 인생을 중간 결산하는 자리였다.
오현규 지휘자는 수원 태생으로 순수 토박이다. 중앙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한 뒤 이태리와 독일에서 지휘 코스를 수료한 정통파다.
음악회는 서막부터 압도적이었다. 수원 유수의 12개 합창단원 222명이 한 무대에서 노래하고, 4개 오케스트라 단원 78명도 역시 오현규 지휘로 멋진 연주를 했다. 일찍이 수원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호화 무대였다.
섬세, 열정, 박력을 겸비한 그의 지휘는 고요, 장엄, 경쾌의 경계를 넘나든다. 객석에서 환성과 박수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새해 2월이면 교직(수원공고 교감)에서 물러나지만, 수원 예술의 꿈나무를 길러낼 수원예술고등학교 설립위원장으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돼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300회 가까운 무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합창단 창립에 참여하고, 가르치며 지휘했다. 거추장 스런 수사(修辭)가 필요없는 지휘자요, 연출가이며 교육자다. 그는 음악 활동 못지 않게 음악 역사를 정리하는데도 한몫을 했다. 수원이 낳은 음악 선구자 홍난파(본명 홍영후)를 친일로 단정하고 이른 바 ‘친일인명사전’에 올리려는 좌파 성향의 민족문제연구소를 설득해 ‘새로 쓴 홍난파 연보’를 만들어 냈다.
그는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몇편의 친일 작곡과 논문을 썼다고 해서 그의 음악세계를 말살하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객관적인 연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자고 주장했다. 평행선을 달리던 두 진영이 머리를 맞대고 반년 가까이 공동 연구를 한 것도 평가할만한 일이지만, 홍난파가 작곡한 150여 편의 가요와 110여 곡의 동요를 깡그리 재조명해 한 권의 연구서로 만들어낸 것은 한국 근대음악사를 바로 잡는데 한 획을 그은 쾌거라 할만하다.
오현규 음악 50년에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