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유쾌한 일이 많지마는 곤란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그 중의 유쾌한 일이라. 환란궁액에 싸여 눈물과 근심으로 지내는 동포가 나의 구휼로 인하야 잠시라도 마음에 근심을 풀고 얼굴에 웃음을 띠우면 나의 유쾌함이 어떻다 하리오. 세상 사람 중에는 자기 몸에 우수(憂愁) 사료(思慮)가 있어 남을 돌아다볼 여가가 없는 사람이 많으며 그렇지 아니하면 사람에게 가장 귀중한 인정이라는 것이 없어 그러한 좋은 일을 하여 볼 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역시 불쌍한 사람인즉 말할 것이 없거니와 그렇지 아니한 사람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자선 사업을 하는 것이 자기 마음을 유쾌하게 하는 방법이니라.”
1917년 9월 21일자 매일신보의 ‘불행한 동포를 구휼하는 미풍’ 제하의 기사 서두다.
기사는 이어진다. “옛날 사람들도 말하지 아니하였나. 책 1만권을 쌓아둔들 자손이 다 읽을는지 어찌 알며 금 일만 상자를 저축한들 자손이 그 복을 누릴지 알 수 있으랴. 다만 음덕을 부지 중에 쌓아 둘 수밖에 없다하였으니 참 좋은 말이라 하겠다. 근일에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사회의 유지들이 앞 다투어 동정을 표하니 참 고마운 일이며 감사한 일이라.”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는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당시 매일신보가 당장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불우이웃 소식을 전하자 각계에서 구호금품이 답지하게 되는데 그 정황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동대문시장 잡화상 김동원 씨의 돈 5원과 삼각정 66번지 박윤관 씨의 돈 5원을 위시하여 영락정 2정목 김혁진 씨의 백미 한 말, 현금 2원이 있었고 특히 전남 순천군 지방금융조합 감사 김종원 씨의 3원과 종로 3정목 김세형 장남 김영학 씨의 3원과 경성상회 김윤수 씨의 1원과 다옥정 기생 홍채봉의 모 김정렬 씨의 2원이 있었고 경의선 신막역 앞 18통 3호 강상도 부인 장순이란 부인은 돈 1원을 우편으로 본사에 보내왔다.”
상인과 기생 어머니까지 온정의 손길은 이어졌다. 우리 만의 온정, 아이티 지진 난민을 위해 발동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