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0 (금)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아침단상] 후손들의 월권(越權)

 

사람들은 심란할 때 찾는 곳이 있다. 물론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야 절이나 교회, 성당 등을 찾겠지만...

경북 안동시 서후면에 위치한 봉정사(鳳停寺)란 곳을 가끔 간다. 좌우 길 옆으로 늙은 소나무가 아치를 이루는 오솔길도 멋지고, 이 길을 걷노라면 시간이 정지된 듯한 고즈넉한 재미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극락전 국보 15호)이 자리하고, 몇 년 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한 곳으로 유명하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란 긴 제목의 영화를 촬영한 영산암이란 작은 암자도 발길을 끈다. 어쨌든 함박눈이 펄펄 내리던 일요일 봉정사를 찾았다. 가을이면 국화향기가 천년 고찰을 뒤덮는데 5천원하는 칼국수도 별미이고 보니 코, 눈, 입 모두가 즐겁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는 이 절에 대한 것이 아니다. 봉정사 만세루 입구에 ‘천등산(天燈山) 봉정사(鳳停寺)’란 현판(懸板)이 있는데, 동농(東農) 김가진(金嘉鎭) 선생이 쓴 글이다. 얼마 전 세 차례나 보류된 동농의 독립유공자 서훈(敍勳)에 관한 뉴스가 머리에 맴돌았다.

서도(書道)에 안목이 없는 사람도 한눈에 참 잘쓴 글씨란 감명을 받는다. 굵은 글씨 그리고 힘이 있되 부드럽고, 알맞은 균형을 이룬 획(劃)... 하여간 문자를 심미적 대상으로 본다면 뛰어난 예술품이다.

서얼 출신으로 조선시대 18품계 가운데 으뜸인 정1품에 최초로 오른 분이며 정부의 고관(高官)에서 독립운동가로 변신한다.

우선 경력을 살펴보면 이조·병조참판, 충청남도 관찰사, 농공상공부대신. 그러나 3·1운동 뒤 깨달은 바가 있어 비밀결사단인 대동단 총재, 상해망명 임정고문... 물론 무장투쟁을 지지했다.

평생이 보장된 따뜻한 아랫목을 박차고 엄동설한에 뛰어든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족쇄가 풀린 뒤지만, 서얼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시대상황과 멀지 않았음에도 정1품이라면 능력이 대단했던가 보다.

나약한 지식인의 한계를 떨쳐 버리고 혁명가로 변신해 세월이 어수선할 때 지식인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손수 보여주며 스스로 가시밭길을 택한다.

그런데 왜 아직 독립유공자 반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것일까? 일본은 한일합방 후 여론무마용으로 당시 대한제국 고위관리 75명에게 일괄적으로 작위를 주었다.

공작, 후작, 백작, 남작, 자작... 동농은 남작을 받았다. 마치 제삿집 음복 나누듯 작위를 주고 또 받았지만, 이것이 동농의 치명적인 실수로 살아생전은 물론 죽어서도 따라 다닌다. 이런걸 숙명(宿命)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기록상엔 작위를 돌려준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포상을 할 수 없다는 게 국가보훈처의 공식적인 발표다.

어떻게 일본제국이 내린 ‘남작’ 작위를 가진 사람이 임시정부의 고문이 될 수 있었을까? 죽는 날까지 남작 작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한 인간의 흔적은 결과를 보고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친일과 항일의 경중을 따져 보면, 명확한 답이 나온다.

그리고 사람의 행적은 마지막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정부는 임시정부(임정)의 법통을 계승한다. 어떻게 임정의 고문을 이처럼 취급할 수 있을까?

인색함을 넘어 지나치게 완벽한 조상을 원하는 건 아닐까? 이것은 분명 후손들의 월권이다. 더구나 큰아들과 며느리는 임정의 살림을 맡아 온 일꾼이고, 동농의 차남은 의열단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고, 또 그의 아들(김석동)은 임정 때 광복군의 최연소 대원이었다.

결국 4대에 걸친 나라사랑은 어디에서 보상받고 기록돼야 하는가?

갑오개혁 후 자주독립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세운 서울 서대문의 독립문 앞뒤의 한글과 한자 글씨도 동농 선생의 솜씨!

오동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늙어가면서도 항상 거문고 소리를 간직해야 한다(桐千年老恒藏曲). 옛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지만... 어디 쉽게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눈을 맞으며 봉정사에서 짧은 시간, 긴 생각에 잠겼었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