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병’, ‘죡턍’, ‘족편’, ‘액우’, ‘버역’ 등은 호칭이 다를 뿐 실은 소의 가죽과 고기를 고아서 식히고 굳혀 조리한 동물성 농축음식 이름이다.
소 이외에도 아교 성분을 얻을 수 있는 돼지, 상어, 박대, 가오리, 대구, 닭, 꿩 등의 껍질이나 뼈를 원료로 쓰기도 한다.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족병이나 족편을 먹을 기회가 거의 없어졌지만 이 음식의 역사는 꽤 오래다. 족편은 누구나 가끔 먹어본 음식이기 때문에 맛과 향을 기억할지 모르지만 만드는 방법이나 연원까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최근 대구경북향토문화연구회 박혜영 연구위원의 ‘고아서 굳힌 동물성 농축 음식에 대한 연구’ 논문을 읽고 나서 족편에 얽힌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족병은 쇠족, 가죽, 꼬리, 돼지껍질, 우양 등에 물을 붓고 푹 고으면 콜라겐이 빠져나와 걸쭉해진 것을 응고시킨 것으로 옛날에는 임금 수라에 올랐던 귀한 음식이었다. 족편과 비슷하지만 제조법이 다른 것이 전약(煎藥)이다. 전약은 동물의 껍질을 주재료로 쓰지만 대추, 건강, 정향, 후추, 꿀 등을 넣어 고기의 누린내를 없앤 것이 족편과 다른데 이 음식은 외국 사신을 접대할 때 특별히 만들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맛볼 수 없었다고 한다. 족병은 1795년(정조 19) 정조 모후 혜경궁 홍씨 회갑연 때도 등장한다. 당시 회갑연의 실상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보면 정조에 올린 대전 진어상 다섯 가지 상차림이 적혀 있는데 주다소반과(8기·器)와 야다소반과(7기·器)에 각각 족편이 들어 있다. 궁중에서 열리는 연회에 양반들이 참석해 요리를 맛보다 보니 요리법이 민가에 알려지게 됐고 명절 때 주고 받는 세찬(歲饌) 가운데 족편이 끼게 되었다. 족병 또는 족편과 약전은 만드는 방법이 다를 뿐 양기를 보충하기 좋은 보양음식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과 정성없이는 만들 수 없었던 족병과 전약, 안동이나 전주 지방의 종갓집에나 가야 맛볼 수 있으니 단절될까 두렵다. 한식의 세계화 차원에서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