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눈이 많이 왔다. 덕분에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온지 6년 만에 처음으로 어린아이처럼 이리저리 돌며, 들떠 눈을 치운 기억은 이번 겨울의 큰 이벤트였다. 다른 곳에서는 많은 눈으로 인해 사건 사고가 이어지고 어려움이 넘쳐나는 힘겨운 하루하루이기도 했다.
한파와 폭설로 인한 피해상황이 연일 보도되며 안타까운 사연들이 이어지고 걱정스런 마음이 들 때, 하늘이 구멍난 것처럼 내리는 눈 앞에서 또 다시 철없는 어린 내가 되었다. 마냥 내리는 눈을 즐거워하며 눈밭이 된 도심의 공원을 뒹굴기도 하고, 영화 찍듯 놀이를 했던 기억은 참으로 오랜만에 유쾌한 기억으로 남았다. 아이들은 이런 엄마를 보며 ‘철없는 엄마’라 했다.
가끔은 엄마도 ‘엄마’를 떠나 철이 없어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 장난기를 발동하며 엄마를 놀려댄다. 분명 함께 좋아하고 웃고 떠들며 놀았건만 돌아온 것은 ‘철없다’는 딱지가 붙어 함께 놀아준 엄마 본연의 마음을 무색케 한다. 덕분에 아이들과 오랜만에 몸을 부딪치며 가족에 대한 애정을 돈독히 하는 기회였다.
눈이 내린 하나의 현실은 두 개의 양면을 갖고 내 안의 갈등을 만들어 냈다. 눈이 내려 즐겁다는 것과 눈이 내려 불편하고 힘겨운 일들이 발생한다는 사이에서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며 정리하지 못한 부조화가 마음의 갈등을 일으킨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하나의 주체로서 아이들이 함께 하며 새로운 양상을 만들어 낸다. 갈등하는 마음들이 오고 가며 더욱 복잡한 그림을 그리게 한다. 이때 갈등은 더욱 꼬여지게 되며 갈라서 보기 어려운 해결 불가능한 가족의 문제로 갖고 가기 십상이다.
내가 ‘철없는 엄마’를 부정하기 시작하면 아이들과의 관계도 경직되기 시작하며 놀이가 끝나고 말이 씨가 되어 악순환을 거듭하며 갈등은 자라기 시작한다. 부부관계도 비슷한 패턴과 경로를 겪으며 파경을 맞게 된다. 반대로 유연하게 대처한 부부나 가족관계에서는 좀 더 풍요로운 관계를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지난주 협의이혼 과정을 밟고 있는 두 쌍의 부부를 만났다. 이혼하기 전 충분이 논의되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친권, 양육권, 양육비, 면접교섭권, 위자료, 재산분할 등 여러 항목의 협의 사항 중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준비해온 사항은 일부였다. 더욱이 이혼 후 건강한 심리 회복에 관한 준비는 전무하며 분노하는 마음이 상처가 되어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한 쌍의 부부는 분명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아이와 재산상의 대부분을 상대에게 주는 것으로 협의내용이 정리되었다.
잘못은 인정하지만 반성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상당한 귀책사유가 있었음에도 미안함이 전혀 없는 행동과 말투는 상대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며 상담이 마무리되었다. 짧은 시간 부부의 여러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헤어지는 마당에 ‘철없는 남편’이었음을 인정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상대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좀 더 성숙한 헤어짐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이것저것 협의내용을 점검하는 필자에게 그는 상담 빨리 끝내라고 재촉한다. 회사로 들어가 일해야 한다는 주장을 당당하게 편다. 그래야 아이의 양육비를 줄 수 있다고... 인륜지대사는 결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혼의 과정도 있다. 30여분의 상담시간을 힘겨워하는 그에게 그렇게 해서 양육비를 준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철없는 상담자’가 되기 싫어 꿀꺽 삼켜 버렸다.
두 번째 부부는 한쪽이 약간의 장애를 갖고 있었으며 이미 한 번의 협의이혼 과정이 있었다. 7개월 정도 별거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부부간의 갈등보다 고부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시댁을 중심으로 한 가족체계 안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것이 부부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킨 것으로 보였다. 부인이 그동안 서러움과 회한을 풀며 눈물을 흘린다. 남편도 미안하다며 진심어린 말과 함께 본인도 매우 힘들었다며 눈가가 붉어지며 ‘당신도 힘들었을 거야’라고 이야기하자 부인은 눈물보가 터진다.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따뜻한 기운이 흐른다. 서로가 ‘철없는 아내와 남편’임을 전부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부분적인 인정만으로도 조금은 아름답고 품위있게 헤어지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상대를 다시 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나의 입장이 아니라 그의 입장에서. 내 안에 중심이 분명하면 ‘철없음’도, ‘철 있음’도 나를 자유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