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투리에 ‘알분스럽다’, ‘얼분스럽다’는 말이 있다. ‘알분스럽다’는 몰라도 되는 걸 이것저것 참견하고 또 잘 모르는 것도 아는체 하는 것. 그리고 ‘얼분스럽다’는 격에 맞지 않게 성숙된 언동을 하는 것. 한 쪽은 얄밉고 한 쪽은 시건방진 느낌을 주는 말이다. 삼국지의 조조는 알분스럽고, 유비는 얼분스럽다고 평한다.
얼마 전, 총리가 문상을 갔다가 실수한 가십을 보고 ‘정말 이럴 수 있을까?’ 생각을 했다. 총리라면 고리타분하지만 흔히들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이란 표현을 한다. 그만큼 의무와 권리가 큰 자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라. 관혼상제의 예절은 오래 전통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취급할 순 없다.
4선 국회의원 ‘이용삼’씨라고 얼마 전 타계(他界)해서 국회장으로 장례를 치룬 일이 있다. 선거구가 정확히 어딘지 몰라도, 가정이 너무 가난해 고등학교만 졸업했지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93년 14대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보궐선거에 당선된 분이다.
20년 전 일이라 당시 당선된 뒤 프로필을 보고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정치에 일반적인 관심밖에 없는지라 그 뒤, 국회활동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벌써 4선인지는 전혀 몰랐다.
총리: 57년생이고 보니, 아직 초선(初選)이고 한창이신데···
유가족: 초선이 아니고 4선입니다.
국회에서 선수(選數)는 별 하나만큼 대단하다. 육군 대장에게 준장이라고 불렀다면 이건 정말 큰 결례!
총리: 자녀들이 어릴텐데···
유가족: 아직 미혼이셨습니다.
총리: 앞으로 그럼 형님께서 집안을 두루 잘 돌보시고···
유가족: 제가 동생됩니다.
참으로 같잖은 일이다.
재야(在野)에 있다가 장관으로 입각한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정말 직업공무원들 대단합니다. 뉴스에서 입각소식을 발표한지 10분도 안돼서 명함을 만들어 바칩니다.”
“알고 보니, 입각 가능한 사람들의 명함을 미리 삼배수(三倍數) 가량 만들어 둔다고 합니다.”
“그리고 면담할 스케줄을 보고하면서 상대방의 학력, 경력, 가족사항, 취미까지 일목요연하게 보고를 하는데. 처음에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 쓸데없는데 시간 낭비하는 건 아닌지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상대방 면담을 할 때 참고로 하면 퍽이나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직업공무원들의 나쁜 점은 소위 낙하산 장관이 오면 자리에 앉아서 정책구상 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정도로 하루일정을 빡빡하게 잡는 것입니다.”
“여기는 안갔으면 좋겠다고 하면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논리정연하게 펼치면 하는 수 없이 따라야지요.”
“그리고 급하다고 결재가 올라오면 계장부터 차관까지 사인을 했는데 깊이 생각할 여유를 애당초 빼앗아버리는 겁니다. 결국은 자기들의 꼭두각시가 돼 버립니다. 자기들끼리는 ‘장관 뺑뺑이 돌린다’고 한답니다.”
예부터 공무원들의 윗사람 모시는 건 철저하고, 또 그렇게 보아왔다. 그런데 이번 총리 문상에는 간부들이 여섯명 가량 수행을 했다고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핑계없는 무덤이야 있겠는가만 하도 일정이 바빠서 챙기기 못했다고 하는데 설마하니 백면서생(白面書生)의 총리라고 무시한 건 아닌지? 단정적(斷定的)으로 말하면, 지극히 형식적인 조문이란 사실이다. 현직 국회의원이 타계했으니 혹시 문상을 가지 않으면 국회 경시니 뭐니 하면서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마지못해 간 것은 아닌지? 어쨌든 진정한 애도의 뜻은 결여됐다.
어떤 분은 길사(吉事)에는 빠지더라도 흉사(凶事)에는 반드시 찾아 간단다. 미사여구가 필요없다. 진정을 담아 “얼마나 슬프시겠습니까?”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초선이니 가족이니 이 모두 쓸데없는 말이다. 자꾸 ‘알분’이란 말이 머리에 맴돈다. 총리가 현직 국회의원의 빈소를 찾는 것, 작지만 예절을 으뜸으로 치는 우리나라에선 이것도 품위에 관한 일인데... 혹시 내가 이 글 때문에 ‘얼분스럽다’는 소리를 듣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