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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금정굴 사건

이창식 주필

영혼 불멸의 믿음으로 인해 시체를 매장하는 풍습은 신석기 시대부터 있어왔다. 집 근처의 땅 속이나 조갯더미(貝塚) 밑에 묻다가 지석묘, 석관묘, 옹관묘, 적석총, 토광묘 등에 시체를 안치하였다. 후장(厚葬) 풍습이 생겨나고 부여에서는 순장(殉葬)제도가 있어서 100여명을 묻기도 했다. 삼국 시대에는 무덤의 장식이 늘어났다. 불교의 영향으로 후장 풍습이 쇠퇴하면서 화장법이 생겨났고, 고려 시대에는 풍수설의 영향으로 방위를 엄격히 가려 묏자리를 정하였다. 그러나 무덤이 영혼이 머무는 집(유택)이라는 관념은 동서고금에 변함이 없다. 성묘를 하고 모역을 정비하는 일은 죽은 조상을 찾아가 예를 갖추고 안락하게 하려는 효의 표출이다. 내 몸이 조상에게서 나왔으니, 조상의 유택인 무덤을 돌봐야함은 인간의 도리다. 그런데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지 60년, 유해 발굴을 한지 15년,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불법 학살로 규정하고 국가가 책임지고 유해 봉안을 하도록 권유한지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택을 정하지 못해 구천(九天)을 떠도는 원혼들이 있다니 놀랍다. 이름하여 고양 ‘금정굴 학살사건’의 현주소다. 이 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153명의 주민을 부역을 했거나 그 가족이란 이유로 집단 총살하고, 금정굴 수직 갱도에 암매장한 사건이다. 한국전쟁은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다. 좌우로 갈린 사상이 수많은 생명을 죽이고 재물을 파괴했으며 민족과 국가를 두쪽으로 갈라 놓았다. 한국전쟁의 여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금정굴 피해자와 그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이 그 증거다. 칼라일은 “사상은 아무리 고상한 것이라 해도 사람의 목적이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전쟁은 그런 의미에서 잘못된 선택이었다. 죽은 자는 유택에 들 권리가 있다. 반면에 살아 있는 자는 망자가 어떤 일로 변을 당했던지 안식처를 마련해줄 책임이 있다. 유족들은 의미 부여를 위해 금정굴 근처에 안식처를 마련해주기를 바라고, 고양시는 근린공원으로 지정돼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이 문제야말로 타협과 이해로 해결할 사안이다. 60년 동안 머물 곳을 찾지 못해 떠돈 원혼을 더 이상 고단하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양보하는 자가 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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