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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

 

구정을 지낸 치마 입은 분들의 노고에 대해 “고생했습니다”, 이런 평범한 인사가 아닌 “훌륭하십니다”란 찬사로 대신한다. 일년 가운데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고 가정주부들을 대상으로 물었더니 대부분 명절이라고 대답했다.

‘봉제사 접빈객’이란 말이 있다. 주로 지체 높은 집안의 한 해 일상을 함축한 표현인데 봉제사(奉祭祀)-제사 모시고, 접빈객(接賓客)-손님 접대한다는 말이다. 요즘처럼 수도꼭지만 틀면 뜨거운 물이 콸콸 흘러나오는 시대가 아닌, 한겨울 자리게가 꽁꽁 얼 정도의 추위에 제사 지내기 전후 유기그릇을 숱덩이 혹은 기왓장 부순 것으로 닦고 광냈을 시절, 봉제사 접빈객! 참으로 몸서리 칠 일이다.

특히나 종가(宗家)의 경우 제사 관계자(?) 여러분들의 노고는 필설(筆舌)로 다할 수 없다. 얼마전 타계한 퇴계선생 15대 종손 동은씨의 걱정거리가 떠오른다. 그 어른 밑에는 차종손이 있고, 손자로는 치억씨가 있다. 차종손 근필씨(부친이 돌아가셨으니 종손이 되었지만)마저 팔순을 바라보는데,상처(喪妻)를 하셔서 혼자되셨다.

그 큰 종가를 덜렁 남자 3명이 꾸려갔는데, 종손 되시는 어른은 항상 걱정이 손자의 혼사(婚事)문제였다. 옛날이야 경상감사(慶尙監司) 자리와도 안 바꾼다고 했지만,고생이 보장된 종부(종손의 부인)의 자리에 선뜻 시집보낼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소위 요즘 신식여성이 과거의 굴레에 묻혀 세월을 보낼 처녀가 몇이나 될까? 설거지 한다고 물이 손에 조금 묻으면 반드시 핸드크림 바르는 시대에 손에 물기 떨어질 날 없는 신분을 누가 원할까? 손자인 치억씨는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좋고, 특히나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1등 신랑인데... 단 한가지 종손이라는 굴레 때문에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여기서 좋으면 저기서 싫고, 저기서 좋으면 여기서 싫고, 하여간 문종에서 치억씨 결혼추진위원회도 구성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다행히 이번 돌아가셨을 때는 결혼을 해 귀한 아들까지 얻었는데... 할아버지에겐 그 보다 좋은 선물이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구정을 맞아 시골이나 시댁에서 돌아온 모든 주부들에게 명가(名家)의 내훈(內訓)이란 책을 소개할까 싶다. 1985년 초판을 발행해 25쇄까지 책을 찍어낸 80년 당대의 베스트셀러다. 서애 류성용 선생댁의 13대 종부인 박필술(朴弼述) 할머니가 구술한 것인데 부제(副題)가 ‘올바로 썩을 줄 아는 밀알’이다.

제목부터 희생, 봉사 이런 냄새가 나지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구입한 걸 보면 변하지 않는 가치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은가 보다. 처녀 박필술은 나이 스물에 전실(前室)남매가 있는 재취(再娶)자리를 택했다. 김활란 여사나 김일엽 여사처럼 독신생활을 하면서 여성운동을 꿈꾸는 방년 스무살의 처녀가 종가의 굴레에 스스로 뛰어 든다. 요즈음이야 맏며느리만 돼도 꺼린다고 하지만, 희한하게도 대가문 종부자리가 마음에 들어서 주위의 우려를 뒤로 하고 운명을 택한다.

희생으로 점철된 여자의 일생이야 여기서 되풀이해봤자 이번 명절 때 고생한 것 생각하면 치마 입은 천사들의 부아만 지를 것 같아서 생략하기로 하고,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옛날 황희 정승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 “제 아내가 해산을 했는데 오늘 제사를 지내도 되는지요?” 하자 “그렇게 하게”. 잠시후 또 다른 사람이 와 “오늘 돼지가 죽었는데 집안 제사를 지내면 안되겠지요?”하고 묻자 “지내지 말게”. 그러자 부인이 “왜 그렇게 말씀하시냐”고 물었더니, 지내도 되지요? 하는 사람은 지내고 싶어서 그런 것이고, 안되지요? 하는 사람은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니까 지내지 말라고 했단다.

박필술 여사는 이렇게 말한다. “뵙지도 않은 조상에게 정이 날리는 없다. 그러나 제사란 추모의 정을 표시하는 향연인데 최소한의 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최대한이 아닌 최소한이란 말이 매우 중요하다.

2008년 12월 돌아가실 때까지 매일 일기를 쓰셨는데, “부산에서 펄펄 뛰는 생선을 아이스박스에 넣어 왔다.

내일 아버지 제사에 쓰려고 사온 것이다. 칼도 서른네개를 사왔다. 얼마나 무거웠으리.” “화투를 쳐서 돈 500원을 땄다. 기뻤다.” “대한가족계획협회가 마련한 전국교육이 있어서 경주 화랑의 집에서 교육을 받았다.” 사소한 것까지 가치 있는 말로 다가오는구나.

안네의 일기가 참으로 좋았지만, 우리들의 어머니 우리들의 할머니였던 박필술 일기도 귀한 것이다. 내훈을 읽으면 돌이 옥(玉)이 되고, 풀이 난초가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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