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에만 사우(四友 : 종이, 붓, 먹, 벼루)가 있는 것이 아니다. 노년에도 사우는 있다. 첫째 노반(老伴)이다. 노반은 아내 또는 남편을 말한다. 젊었을 때는 양쪽 모두 잘난 맛에 살았고, 자식 키우는 재미 때문에 가난도 이겨냈다. 그러나 아무리 잘난 부부도 결국에는 가정이 종착지가 되고, 인생의 동반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둘 중 하나가 죽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라고 했다. 예로부터 늙은 홀아비, 늙은 홀어미, 부모 없는 아이, 자식 없는 늙은이를 사궁(四窮)이라 하였는데 홀아비를 으뜸인 사궁지수(四窮之首)라 하였다. 부부가 한날 한 시에 죽을 수는 없다. 해법은 한가지 밖에 없다. 남자는 7~8세 연상의 여인, 여자는 7~8 연하의 남자와 짝을 짓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그 반대다. 홀아비, 홀어미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둘쩨는 노본(老本)이다. 노본은 늙어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노인이 무엇 때문에 돈이 필요한가. 친구들과 어울려 마시는 차나 막걸리 값, 가끔 책을 사거나 영화를 보고, 가벼운 여행을 하려면 ‘문화비’가 필요하다. 설날 손자 손녀에게 세배돈을 주려면 ‘체면 유지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염치 없이 손을 내밀지만 부모는 그렇지 못하다. 임종할 때까지 내 인생 내가 지키는 ‘무한책임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노본은 절대적이다. 예외적으로 거금을 가진 노인이 있다면 하늘을 찌르는 나무 잎도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간다(落葉歸根)하였으니, 육영사업이나 난민구호기금으로 내놓고 간다면 자식에게 물려준 것보다 몇배나 값질 것이다. 셋째는 노건(老健)이다. 우리나라도 어느새 고령사회 문턱에 와 있다. 인간은 생노병사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죽지만 건강하게 살다 죽는 것과 병마에 시달리다 죽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노건이야말로 노인과 자식 모두에게 유리한 인생 경제학이다. 넷째는 노우(老友)다. 노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고독이라고 한다. 고독을 해결해 주는 것이 벗이다. 자식은 부모를 위해 줄 수는 있어도 벗이 되어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노인사우를 누리는 노인이 얼마나 될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