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이 연작시 ‘만인보’를 최근 완간해 25년에 걸친 대장정을 마무리했다는 소식이다. ‘만인보’는 총 30권으로 4천1편의 시가 실렸으며 등장인물만 해도 5천600여명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이다. 대단한 노작이요, 역작이 아닐 수 없다. ‘만인보’는 시인이 1980년 내란음모 및 계엄법 위반으로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 구상한 것으로 1986년 첫 출간이 됐다. 고은 시인하면 먼저 서른 이전에 출가와 환속이라는 범상치 않은 인생역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물들과의 교류가 눈에 띈다. 그야말로 ‘젊은 날의 초상’이라 해도 좋을 시인의 치열한 삶은 지난 1993년 말 ‘나, 高銀’이란 제목의 자전적 소설로 발표됐다. 193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시인은 군산중학교 4년 중퇴의 학력으로 군산 북중학교 국어와 미술교사로 근무하던 어느 날 동국사로 홀연 출가를 한다. 우리나이 열아홉 살 때의 일이다. 일초(一超)라는 법명으로 당대의 선승인 효봉(曉峰) 스님의 제자가 된 시인은 ‘비승비속(非僧非俗)’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단의 괴짜로 일찍이 많은 화제를 뿌렸다. 지난달 열반한 법정(法頂) 스님이 1950년대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시인과 함께 수행하던 도반이었다. 출가 후 조지훈, 서정주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시’와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내로라하는 불가의 선지식들로부터 법기(法器)를 인정받은 수좌였다. 나름대로 운수행각을 벌이며 속세의 인연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가졌던 시인은 이때의 경험을 ‘만인보’를 통해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다.
“25년이 흘러 마무리 하고보니 술에 취해있다 깬 느낌”이라고 고백한 시인은 “시를 쓸수록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쓰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해마다 노벨문학상 물망에 오르내린다.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만인보가 계속되느냐는 질문에 “강박적인 약속은 하지 않겠다”면서도 “이승에서의 본능이 작동할 때는 내 의도와 상관없이 진행할지도 모른다”고 여운을 남겼다. 그렇다면 시인은 혹시 노벨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