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순·심미선양이 우리 곁을 떠난지 1년이 됐다. 말이 떠난 것이지 그녀들은 비명에 횡사한 것이다. 그래서 애통하고, 국민들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
전율감 마저 감돌았던 촛불시위는 우월주의에 빠져있었던 미국으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했고, 부시 미국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도 받아 냈다.
그러나 촛불시위 이후 두 나라는 동맹국인가를 의심할 만큼의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미국내에 확산된 혐한(嫌韓) 기운은 주목할만한 대목이었다. 여기에 더해 주한미군 감축설과 함께 재배치문제가 대두되더니, 마침내는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부정적 평가까지 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이같은 일련의 사태를 촛불시위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목적이 순수해도 상황에 따라 궤도가 바뀔 수 있고, 방향이 비약되면 목적 자체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다.
불평등 한·미협정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재발방지도 원론적인 약속뿐이니 무리도 아니다. 그러나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치고 일거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막대한 국가 이익과 국민적 자존심이 걸린 사안일수록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애증의 경계를 넘나들며 표출되었던 감정적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쪽이 격하면 상대도 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위 조절이 중요한데 6.13의 경우는 솔직히 우리 측의 일방적인 공세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과거사가 아닌가. 이제는 지난 1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차원의 시민운동을 전개할 때가 된 것이다. 우선 매듭지워야 할 일은 하늘나라에서 떠돌고 있을 두 소녀가 안식처를 찾아 편히 쉴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일이다. 꽃보다 아름답다는 청춘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은 그녀들이기에 아귀다툼이 없고, 오직 평화만 있는 곳에서 쉴 수 있도록 축원해야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여식을 가슴에 묻고살자니, 피로의 기색이 역력해진 부모와 형제들이 더 이상 외풍에 시달리지 않도록 해방시켜 주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13일에 열릴 추모집회는 미움을 용서하고, 죄 지운자로 하여금 참회하는 자리가 되게 해야 할 것이다.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고, 원한이 깊으면 깊을수록 인간과 세상은 험악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6.13의 교훈으로 삼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