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런 곳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제품이 생산될 수 있을까? 공장의 허름한 시설을 살펴보고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열악한 환경속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이 국내 최고의 제품이란 것이 쉽게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외길 40년을 걸어온 임규혁(59)사장을 만나보고 나서야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편집자 주>
시흥시 신천동 221번지 허름한 창고로 보이는 특수합금 공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시루진청동, 인청동, 알미늄청동, 고력황동 등 비철금속을 약 800kg의 용량의 용광로에서 1천100도가 넘는 온도로 2시간가량을 가열한 쇳물을 크고 작은 조형틀에 부어 제품을 만드는 주물공장이다.
제품을 생산하기위해서는 우선 조형틀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주물사를 틀에 넣고 적당한 압력으로 다지기를 반복해 형틀을 만들고 알맞은 순도의 원료를 용광로에 넣어 빨갛게 달구어진 쇳물을 틀에 붓는 작업을 할 때는 수 십여년을 경험한 숙련공도 순간 숨죽이고 긴장한다.
그만큼 조형틀에 쇳물을 작은 구멍을 통해 적당량 부어야 하기 때문에 자칫 실수를 한다면 1천100도가 넘는 쇳물에 화상 등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그만큼 정교함과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고 임 사장은 귀띔 한다.
여러개의 조형틀에 쇳물을 무사히 붓고 임 사장은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하얀 연기를 길게 내 뿜으며 “좋은 제품을 생산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원료의 배합을 잘 맞춰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주물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가스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지”하면서 그동안 고생하며 지나간 추억을 회상한다.
임 사장이 최초 합금공장에 입문 한 것은 그에 나이 19세 때, 요즘 같으면 한창 부모 밑에서 투정을 부려가며 아무걱정 없이 학교에 다녀야 할 어린나이에 산업전선에 뛰어들어 먹고사는 것에 인생을 걸어야 했던 어려운 시기로 여린 손으로 어른도 하기 힘든 1차산업 생산직에서 처음 그 일을 시작했다.
그가 공장생활을 하면서 귀동냥과 눈동냥 그리고 선배 기술자들로부터 배우고 익히기를 20년, 그간 배우고 익힌 기술로 지난 1990년 인천시 숭의동에서 작은 규모의 공장을 시작했다.
그에 근면하고 성실함과 축적된 기술적 노하우로 거래처와 일감이 늘어나면서 공장의 규모가 제법 커나가고 안정된 공장운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했지만 공장을 시작한지 4년이 되던 해 무려 1억2천여만원의 부도로 인하여 그는 알거지가 되어 신은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안겨 주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깊게 패인 주름살에 쓴웃음을 지어가며 “이젠 그것이 추억이 됐다”고 한다.
“불행이 곧 기회였다”고 재기의 뜻을 품고 2년 후 부천 심곡동에서 단돈 200만원을 사업자금으로 지금의 그에 유명브랜드인 명성특수합금이란 상호로 재기의 불을 용광로에 다시 짚였다.
지금의 상호처럼 그의 기술과 능력에 대해 명성이 알려지면서 먼저 시작한 동종업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대형 완성공장들 마저 직접 오더를 내는 등 눈부신 발전이 있었으나 그는 사세 확장 등 무리하지 않고 초지일관 최고의 제품을 생산한다는 한가지 일에만 전념하여 지금의 합금업계에서 명성을 높여 갔다.
실제로 그는 1996년 당시 소방용 밸브생산업체와 거래를 시작하여 청동소방밸브를 지금까지 납품 인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에 독보적인 기술을 인정받아 원자력발전소에 사용되는 냉각펌프를 생산 납품하는 등 합금 명인으로 긍지와 자긍심이 대단하다.
하지만 그에 명성과 자긍심과는 달리 요즈음은 젊은 사람들이 어려운 3D업종의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해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나이가 60세 전후의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그에 1차 산업의 맥이 끊길 것을 걱정할 때 31세의 작은 아들 민종씨가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다면서 3년 전부터 공장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해 아버지로서 마음 든든하고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면서 젊은 애들이라서 그런지 “한가지를 알려주면 서너가지를 알아듣는다”면서 한껏 자랑이다.
민종씨는 대학에서 지금에 일과는 전혀 관련 없는 마케팅학과를 졸업하고 군대를 전역하여 자신이 전공했던 분야에서 직장생활을 했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현재의 일을 시작해 벌써 3년이 지나 지금은 아버지의 든든한 동반자이자 동업자로 오늘도 굵은 땀방울을 흘려가며 명성을 잇기 위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임 사장은 “기능인으로서 재기에 성공하고 오늘에 자신이 있기까지는 후원자이며 동반자인 부인 이옥순(57)여사가 옆에서 묵묵히 내조하고 자신을 믿고 지금까지 따라와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하면서 부인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소망이 있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후배에게 빠짐없이 전수해 대한민국이 아닌 세계 제일의 합금강국으로 명성이 길이 남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지금에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