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OECD 통계연보’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2008년도 기준으로 1.19명이다. 1.25명이었던 2007년보다 더 낮아졌고, 2004년 이후 5년째 OECD 31개국 중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일본은 2005년에 약 1억2천700만명이었으나, 이후 인구감소가 시작됐고, 노인 인구가 전체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이다.
서울과 경기도가 연결되는 다양한 종류의 도로 중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해 왕래하다보면 엄청난 규모의 아파트 단지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고, 건설되고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도로를 따라 사람과 물자가 왕래하는 것은 사람이 사는 공간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양상은 ‘서울’에 의존해 건설된 것이어서, 소위 ‘베드타운’의 이미지를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인구가 점차 줄어든다는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지방의 초등학교는 통폐합 과정을 거치고 있다. 사람이 줄어드니 아름답던 지방의 마을은 빈집이 늘어갔다. 조성된 지 10여년이 넘은 경기도의 신도시에 사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 한 반에 60~70명의 급우들이 있었지만, 요새는 30여명이라고 큰 딸아이가 얘기하는 것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모든 도시에서 인구가 줄어들고, 특히 앞으로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나아갈 젊은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이 이르렀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진행 할 다양한 신도시 개발사업은 꼭 필요한 것일까.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신도시개발과 관련해 방문하던 외국의 사례 도시 중에서 일본의 다마(多摩)신도시, 코호쿠 뉴타운 등이 있다. 녹지율이 높고, 길도 넓고, 다양한 디자인의 주거용 건물....
그런데 이러한 도시에서는 현재 아이들이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도 드물다. 상가에는 문을 닫은 가게들이 절반 정도에 달한다.
일본의 동경과 오사카와 같은 대도시 인근에 49개의 신도시를 조성한 일본에서도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사회적 변화 패러다임을 인식하지 못했고, 이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보자. 하나의 지역에 인구를 구성하는 세대는 노년층, 중년층, 청년층, 유년층으로 보통 4세대이다. 각 세대가 적절한 비율로 구성돼야 해당 지역은 건강하게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노년층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유년층이 점차 낮아지면 해당 지역의 산업은 그 속성상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의 비중이 높아진다. 유년층이 줄어들면 폐지하는 학교는 점차 늘어나고, 학년당 학생수는 계속 줄어든다. 학생수가 줄어들면 그 학부모의 수도 줄어들게 되어, 결국은 해당 지역의 사회와 경제와 문화를 지탱하는 기반이 되는 청장년층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최근 뉴스에서 유럽의 선진국가중 유일하게 프랑스만이 출산율이 2명이고 나머지 국가는 대개 1명 선에 그친다. 1명이라는 것은 그 나라 인구의 현상유지에 기여하는 것처럼 보이나, 사망률까지 따지면 실제 인구는 줄어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교토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직장과 거주를 하나의 공간에서 실현하기 위한 ‘직주공존사회’를 위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으며, 대도시에서는 마을이라는 작은 공간을 잘 계획하고 설계하는 컴팩트한 마을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모든 지자체에 적용될 수 있는 공통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중소 규모의 지자체에 대한 대안의 하나로 제시하는 것이다. 대도시의 경우는 중소 규모의 도시보다 이러한 문제가 훨씬 더 늦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중소규모 도시에서는 신도시 건설과 같은 대규모 개발이 아니라 기존의 삶의 영역인 마을과 구도심, 중심시가지 등을 되살리는 것이 그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인구가 줄어들고 태반이 노인들이 지역에 대규모로 건설된 신도시는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 지 상상해보라. 활기를 느낄 수 있는가. 밤마다 불꺼진 빈집이 늘어난 아파트, 뛰노는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와 학교. 인구가 줄어들어 운영효율상 통폐합하게 되는 읍면동사무소, 경찰서 등으로 치안과 방범이 불안한 도시.
참으로 사람이 사는 도시를 원한다면 ‘주거전용’의 대규모 베드타운 개발이 아니라, 지역을 살리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아담하고 아름답고 쾌적하고 안전한 ‘삶의 질 전용’의 도시개발로 바뀔 수는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