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에서 제일 밉상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가곡(歌曲)을 부르는 사람, 앙코르 요청이 없는데도 서너 곡씩 연거푸 부르는 사람, 다른 이가 노래 부를 때 딴전 피우거나 노래책 보며 선곡(選曲) 하는 사람 등…. 어떤 이유든지 밉상임에는 분명하다.
고향이 마산(馬山) 출신인 친구가 있다. 평소 눈치가 재빠른 사람인데, 웬일인지 노래방에서는 눈을 지그시 감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밉상으로 보이려고 작정한 것 같은데 가고파의 작사가인 이은상 (李殷相)선생이 마산 출신이라나.
그가 말하는 고향 자랑 가운데 이런 것도 있다.
해병대 출신이 가장 많은 곳이 마산이라나…, 화끈하고 대의(大義)가 결정되면 이 한 목숨 아깝지 않은 곳, 3.15 부정 선거에 저항(抵抗)한 마산의거 그리고 부마사태(釜馬事態)…. 하여간 끝이 없다.
성격이 화끈하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도 마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전국의 정형외과(整形外科) 평균 수입이 가장 높은 곳도 마산이라나…. 이 건 자랑 거리가 아닌데….
그리고 아귀찜도 마산에서 먹어야 진수(眞髓)란다. 덕분에 십 수 년 전 그 친구가 마산현지에서 특별히 매운 맛 아귀찜을 주문하는 바람에 입천장이 헐어 꽤나 오래 고생 한 경험이 있다.
그는 매운 아귀찜에 고춧가루를 뿌려서 먹는 괴력을 보여줬다. 솔직히 그 친구 땀은 좀 흘리더라.
이은상 선생을 비롯해 씨름선수 이만기, 비목의 작곡가 조두남, 심지어 김수환 추기경도 마산 교구(馬山 敎區)의 주교를 지냈다고 자랑한다.
끝이 없다. 문(文)과 무(武)를 다 갖춘 도시. 성지(聖地)라고 했다.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했는데 시큰둥했다. 마산, 창원, 진해가 통합하는데 그것이 불만이란다.
앞으로 마산 아귀찜은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역사에 기록돼 있는 부마사태는 뭐라고 불러야하는지?
창원 아귀찜, 부창사태…. 어림없다고 주장했다.
하여간 전화를 끊고 매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항산(恒産)이 항심(恒心)이란 말이 있다. 살아 갈 수 있는 재산이나 생업이 있어야 마음이 유지된다는 말이다.
지금처럼 경제가 우선시 되는 시대 훨씬 이전에도 산(産)이 심(心)보다 비중이 앞섰다.
도시에 사는 이가 시골에 내려와서, “내 어릴 때 놀던 대로 실개천이 흐르고…. 이건 이기적 주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친구의 불평이 나에겐 섭섭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나에게 비하면 마산 친구는 행복에 겨운 셈이다. 댐 건설 때문에 고향 마을이 곧 물에 잠긴다. 나는 곧 수몰민(水沒民)이 된다.
차라리 실향민(失鄕民)이라면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찾을 수가 있겠지만, 물 밑에 갈아 앉은 고향은 사진 하나로 만족하며 평생을 그리워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슬픈 운명도 있다.
경북 안동이란 곳에 안동댐이 건설돼 수많은 자연마을이 수몰됐다.
당시 2만 7백 명의 이주민이 발생했는데, 이 때 몇 가구가 인근의 임하면을 제2고향으로 삼고 정을 붙이고 살았는데 여기 또한 임하댐이 건설됐다.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두 번이나 이삿짐을 싸야하는 기구한 팔자.
그 분들은 반발했지만 이내 수그러들었다. 나라에서 하는 일인데…. 시골 사람들은 이처럼 순박하다. 나의 일보다 나랏일을 앞세운다.
몇 년 전 지독한 가뭄 때문에 물이 빠지고 옛날 살던 흔적이 떠오르자 멀리 떠나 있던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모두 모여 서럽게 우는 장면이 방송됐다.
그때 다가올 나의 운명은 짐작하지도 못한 채, 남의 일로 생각했는데….
내 고향집 마루에서 넓은 백사장이 한 눈에 보인다. 마당에 잔디를, 인물 좋은 소나무를 심고, 참으로 많은 정성을 쏟았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밤이 되면 귀가 멍할 정도의 개구리 울음소리, 삶은 옥수수 하여간 고향은 내 인생의 분명한 간이역이었다.
강변에서 모닥불 피어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던 집안 대소가와 친구들. 부모님 산소도 옮겨야 하고, 어이할거나.
마산 친구의 푸념은 복에 겨워하는 소리…. 나라일인데 하면서도 가슴은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