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 때마다 벚꽃은 꽃비가 됐다. 동백은 흐드러진 자태 그대로 고개를 꺾었고, 장미는 시들어갔다. 불가(佛家)에서는 생사(生死)를 인연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는 과정으로 봤다.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회자정리(會者定離)’와 ‘거자필반(去者必返)’을 노래했다.
쉽게 말해 돌고 도는 세상이다. 그렇듯 봄은 가고 여름이 왔다. 시흥시 하중동에 있는 관곡지(官谷池)는 500년의 역사가 깃든 곳으로 조선의 문신이자 농학자였던 강희맹(1424~1483)이 세조 9년(1463) 명나라 난징(南京)에 있는 전당지(錢塘池)에서 연꽃 씨를 채집해 와서 이곳에 심었다.
그 후 이 연못으로부터 연꽃이 널리 퍼졌고, 세조 12년 이 지역을 ‘연성(蓮城)’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연꽃을 일컬어 ‘꽃 중의 군자(花中君子)’라고 했다. 개구리밥이 덮인 물위에 두 손을 동그랗게 마주 모은 모양으로 뜬 연꽃봉오리는 조용히 타오르는 불꽃과도 같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연꽃하면 떠오르는 시로 서정주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빼놓을 수가 없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팔당호가 있는 다산 정양용의 고향이기도한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1리가 연꽃마을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 일대는 각종 규제로 경관은 좋지만 개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친환경적인 역발상으로 연꽃을 생각했고, 올해 4월 농경지로 쓰이던 하천부지 8만2천500㎡에 연꽃을 심었다. “연꽃을 주제로 마을 전체가 경제적 성공을 거두자”는 이장 조옥봉 씨의 제안을 받아들인 결과다.이달 말엔 첫 번째 연꽃축제도 연다. 주민들은 앞으로 ‘연꽃생태 체험마을’을 통해 연간 40억 원의 소득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생각을 바꾸면 이렇게 달라진다는 것을 능내마을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