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중국 위해에서 평택항으로 오던 배 안에서 50대 중반의 신모씨가 실종된 사건이 있었다. 조사 결과 그는 뱃전에 신발을 벗어놓고 사라진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과 주변인들은 정황상 투신자살로 여기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신씨는 소무역상인이었다. 한국 평택과 중국 웨이하이(威海)를 오가며 한국의 공산품을 중국으로 나르고 중국의 농산물을 소량으로 운반하는 이른바 ‘보따리상’이었다. 주변인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는 얼마 전 중풍을 맞아 몸이 성치 않은 상태여서 비관자살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소무역상인들은 일명 다이궁(帶工, 代工)으로 불린다. 카페리를 이용해 중국의 참깨, 고추 등의 농산물을 평택항으로 배달하고 나서 그날 오후 수도권에서 평택항으로 운송된 원단, 전자제품 부속품 등 공산품과 화장품, 커피, 과자, 사탕 등 국내 물품을 타고 온 배편으로 중국까지 가서 전달해 준다. 이들은 운반료로 생활한다. 그런데 이 운반료라는 게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일해도 최저 생계비에도 한참 못 미치는 50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은 배를 떠나지 못한다. 떠나는 순간 노숙자로 전락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스스로를 선숙자(船宿者)라고 부른다. ‘배에서 사는 노숙자’란 뜻의 자기 비하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밥값조차 아끼기 위해 중국이나 한국 거래처에서 싸주는 도시락에 김치나 마른반찬 등만을 먹으며 생활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사업에 실패했거나 직장을 잡지 못한 사람들로서 50대~70대가 대부분이다. 공무원이나 교사출신도 있고 군 간부출신도 있다. 이들의 권익을 위한 단체인 (사)경기도평택항 소무역상연합회 최태용 회장의 경우 수백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를 경영했다가 IMF 때 도산한 기업인 출신이다.
그러나 이들은 안타깝게도 범죄자로 인식되고 있다. 국민들은 중국산 농산물을 들여와 한국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집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갖고 나가는 한국산 공산품들은 이들이 들여오는 중국산 마늘이나 고추보다 10여배 이상 값이 나가는 물건들이다. 따라서 외부의 손가락질에도 이들의 마음속에는 ‘우리는 개미 수출군단’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숨진 ‘보따리상 신씨’도 그런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배를 탔던 사람 중의 한명이었다. 이들의 바람은 소박하다. 자신들을 직업인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사실 IMF 때엔 정부에서 보따리무역 강좌까지 개설하면서 장려한 적도 있다. 이제 정부에서도 한-중무역의 최전방에 있는 이들에 대한 인식을 바꿀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