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오쿠라 슈코칸(大倉集古館) 후원에는 이천 향교 근처에 있던 고려시대 오층석탑과 평양 율리사터 팔각오층석탑이 나란히 서 있다. 일제강점기에 반출된 고려시대 석탑들이다. 이 탑들은 1910년대에 일본 재벌인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1837~1928)가 인천항을 통해 가져갔다. 오쿠라는 경복궁 자선당을 뜯어가 자기 집 후원에 세워 놓는 등 조선 문화재 무단 반출로 악명이 높았던 자다.
경남 창녕에서 출토된 5~6세기 신라 금동투각관모(金銅透刻冠帽)는 일본 중요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신라시대 관모가 일본 문화재로 둔갑한 이유는 ‘약탈’ 때문이다. 대구에 거주하며 도굴을 배후에서 조종한 악질적인 수집가였던 오쿠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64)가 빼돌린 우리 문화재 1천100여 점 중 하나가 바로 금동관모다. 금동관모 외에도 오쿠라가 가져간 우리 문화재 중 8점이 중요 문화재, 31점이 중요 미술품으로 인정되는 등 유물 39점이 일본 국가 문화재로 지정돼 도쿄국립박물관 오쿠라 컬렉션에 소장돼 있다.
이 두 명의 오쿠라와 같은 악명 높은 문화재 약탈자들에 의해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일본 에 가있는 우리 문화재는 6만1천409점에 이른다. 이는 문화재청이 조사한 수치지만 실제로는 10만 점을 훨씬 넘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국보나 보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는 우리 문화재를 돌려받을 방법은 쉽지 않다. 반출이 불법으로 이뤄졌다는 증거도 제시하기 어렵고 자칫 외교적 마찰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환수된 우리 문화재 5천102점 중 대부분도 개인이나 단체가 기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한·일 정부 협상으로 돌려받은 문화재는 1천728점으로 상당수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체결한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의 결과물이다.
이천오층석탑을 되찾으려고 이천시와 환수위원회가 19일부터 22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오쿠라 재단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모쪼록 선대의 잘못을 반성하는 뜻에서라도 조속한 반환이 이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