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적법성 여부를 놓고 숱한 논란이 됐던 한일합병이 국제법상으로 무효임을 입증하는 조약문건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10일 서울대 이태진 명예교수가 공개한 ‘일본 측 한일합병 조서’ 사진자료에 따르면 1910년 8월29일 일왕(천황)이 한일합병을 공포한 조서에 국새(天皇御璽)를 찍고 ‘무쓰히토(睦仁)’라는 이름을 서명한 사실이 확인됐다. 반면 대한제국 순종황제가 같은 날 반포한 조서 원본에는 국새가 찍히지 않았고 이름도 서명하지 않았다. 그 대신 행정적 결재에만 사용하는 어새만이 날인돼 있다. 양측 조서의 형식요건이 이처럼 상이한 것은 한일합병이 순종황제의 승인을 거쳐 합법적으로 이뤄졌다는 일본 측 주장을 뒤엎는 것으로, 국제법상 무효임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 어학연구원이 소장한 순종황제의 조서 원본은 공개된 적이 있으나 이를 비교할 수 있는 일본서 원본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합병조약 무효 논란은 해묵은 논쟁거리 중 하나다. 한국은 합병에 이르는 일련의 조약 자체가 강압적으로 체결된 불법조약이라는 점에서 원천무효라는 입장이다. 이와는 달리 일본은 조약 자체는 합법적이나 한국의 독립으로 무효가 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국의 입장 차는 1960년대 국교정상회를 위한 회담 시작부터 계속 평행선을 달렸고, 양국은 결국 서로 해석차의 여지가 있는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는 애매한 문구로 정리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2조에서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합병조약이 무효라는 주장이 현실적인 힘을 갖게 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도 10일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발표한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의 강제성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기는 했지만 합병 과정의 강제성은 물론 불법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점은 사과의 진정성 여부를 떠나 심히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한일 양국의 지식인들은 앞서 지난 5월 서울과 도쿄에서 ‘1910년 체결된 한일병합 조약은 무효’란 내용의 성명을 동시에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민간차원에서 양국 간에 진일보한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해서는 안될 일이다. 더욱이 강제합병이 무효임을 입증하는 문건이 공개된 마당에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