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일본 정부는 지난 10일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담화를 통해 ‘조선왕실의궤(朝鮮王室儀軌)’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도서를 가까운 시일 내에 반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조선왕실의궤는 조선시대 600여 년에 걸쳐 왕실의 주요 행사와 왕릉 조성 및 왕실문화활동 등을 그림으로 기록한 귀중한 자료다. 그러나 조선 건국부터 기록돼온 의궤는 임진왜란으로 모두 소실되고 현재 전해지는 것으로는 1601년(선조34) 의인왕후(懿仁王后) 장례에 대한 기록이 가장 오래됐다.
이번에 일본으로부터 돌려받고자 하는 조선왕실의궤는 1922년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일본 왕실에 기증해 현재 궁내청 서릉료(書陵寮)에 소장돼 있는 81종으로 원래 오대산 사고(史庫)에 보관돼 있던 것이다.
한일병합을 전후해 일본 학계엔 조선 연구의 열기가 높았다. 동경제국대학의 한반도를 포함한 대륙관계 연구학자들이 데라우치를 움직여 오대산 사고의 조선실록을 포함한 서책 모두를 주문진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어간 일은 문화재 약탈의 시작에 불과했다.
오대산 뿐만 아니라 강화 정족산성과 무주 적상산성, 봉화의 태백산 등 4대 사고 또한 기구한 종말을 고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조선의 국운이 기울던 1908년 말 강화 전등사에 가와이 히로타미(河合弘民)란 자가 헌병의 호위를 받으며 찾아와 사고 문을 도끼로 부수고 서책 21권을 가져갔다. 이러한 불법행위로 가져간 서책들은 현재 일본 교토대학 도서관에 기증돼 ‘가와이 문고’로 보관되고 있다. 또 통감부 시절 통역관으로 와있던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가 빼돌린 막대한 분량의 우리 전적(典籍)들은 현재 일본 국회도서관의 ‘동양문고’에 대부분 들어가 있다.
무지한 백성들도 이들의 약탈에 한몫을 했다. 1913년 2월의 매일신보 사설은 당시의 딱한 정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몰지각한 부류들은 선조 및 고철(古哲)의 영묵잔편(零墨殘編)을 진개(塵芥)처럼 여기고 , 혹 몇 푼의 동전에 매각불석(賣却不惜)하니 인문(人文)의 쇠퇴가 어찌 이리 심하뇨. 가련하도다.’ 이번 의궤반환을 계기로 약탈 문화재를 모두 반환받아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했으면 한다./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