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을 때는 색다른 명분을 내세워 약간의 음모(陰謀)가 무사히 통과됐을 때 그 당시에는 안도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면, 과장(誇張)됨을 부끄러워하는 후유증은 오래 가는 법이다.
중학교 시절, 서울 구경을 하고 싶어서 가당찮게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 운운해서 아버지로부터 허락을 받고 두둑한 용돈을 얻어, 상경하지만 학습은 창경원 한 바퀴로 끝내고, 극장과 빵집에서 시간과 돈을 낭비한 경험이 있다.
‘신사유람단’ 참으로 거창한 이름을 끌어들였다. 여기에서 ‘신사’란 젠틀맨이 아니고 선비란 뜻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알았다.
얼마 전, EXPO가 열리는 중국의 상해(上海)에 다녀왔다. 비행기 안에서 신사유람단이란 단어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철없던 때의 단순한 거짓말이었기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비행기를 탈 때마다 그 말이 떠오른다.
인원은 예사롭지 않은 구성이었다.
나를 제외하고 이제까지 치열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나름대로 각자의 분야에서 고민하는 4명. 갑자기 예비군 훈련장에서 만난 것처럼 허물없어졌다.
상해는 서울 온도보다 체감(體感) 온도가 두 배 가량 높은 듯 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 이벤트의 하나인 상해 EXPO는 우선 규모면에서 엄청 컸다. 197개국이 참여했다. 주제는 ‘더 나은 도시, 더 나은 삶’.
중국관은 황제의 관(冠)을 상징하는 커다란 붉은 건물로 구성돼 있는데 대외적으로는 “우리 이제 먹고 살만하니 너희들 떠받들어다오” 세계를 향해 포효(咆哮)하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소위 자기네 인민들에게는 “보아라, 중국의 위상이 이 정도이니 앞으로는 찍소리 하지 말고 국가의 시책에 따라와라” 하는 선전의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난 용(龍)!
그러나 문화(文化)의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사실 예술(藝術)과 과학(科學)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갈등(葛藤)한다. 지금은 막대한 관광객들의 수입원이 되고 있는 파리의 에펠탑도 심지 없는 촛불이라고 뒤마, 모파상 등 당대의 유명한 300명의 예술가들이 에펠탑 건설에 반대하는 탄원서에 서명했다고 역사에 기록돼 있지 않은가?
문화가 없는 국가의 발전, 누구 말 따라…. 방향은 모호하고 속도만 있을 뿐이다. 중국의 상당한 예술인이 문화가 없고 과학만이 존재하는 EXPO 자체를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관은 정말 품위가 있었다. 3층 철근 구조로 규모면으로 중국 다음에 웅장했는데 우선, 벽체에 한글로 가로세로 뜻 깊은 말을 나열했다.
예를 들어, “들꽃도 사랑을 압니다”, “파송송 넣은 라면, 기가 막힌다.” 한글의 기하학적인 특성을 입체적으로 표시했다.
상상해 보라, 큰 건물에 이 말 저 말로 가로세로 적혀 있는 것을.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제 2의 백남준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설치 미술가 강익중의 작품이다.
야외에서는 예쁜 무희들이 북춤을 추는데 평소에 듣던 둥둥둥 하는 북소리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심장소리였다.
저녁 자리에는 새로이 주류에 편입하자마자 좌장(座長)의 자리를 놓고 욕심을 내는 중국과 이제까지의 세계를 요리하던 미국이 우리나라에 앞으로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이야기가 오갔다.
A라는 사람은 “중국의 영향을 받으면, 우린 비참해진다. 역사를 거울로 삼았을 때, 그들이 공물(貢物)을 요구한 것은 조선의 딸들, 인신매매 범이다. 그리고 걸핏하면 세자(世子)를 볼모로 잡아 놓고…. 북한이 쓰러지면 중국이 바로 먹을 것이다”.
B라는 사람은 “미국은 계산된 복지를 위장으로 삼아 간접적으로 속국을 만들려고 한다. 6·25 이후, 양국이 악수를 하고 중앙에 성조를 달고, 구호품을 줬는데 그 것 모두 잉여농산물(剩餘農産物)을 처리하기 위한 방법이다. 안 팔리던 재고를 정리해서 좋고, 구세군처럼 보여서 좋고!…”.
그러나 중국관의 벽에 걸린 음수불망정인(陰水不忘井人). 우리는 물을 마실 때 우물을 판 사람을 결코 잊지 않는다.
해석의 폭이 넓을 수 밖에 없다. 과연 우물을 판 사람은 누굴까?
이번 방문단의 이름은 ‘문화기행’으로 정했다. 문화란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리고 여행은 구성원이 뜻이 맞아야 좋다는 평범한 진리!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대전 EXPO처럼 축제가 끝난 후의 황량함. 어떻게 견딜런지…. 하는 부질없는 걱정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