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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책임의 한계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주고받고, 아이들 교육 문제를 포함해서 대소사(大小事)를 의논하며 막역하게 지내던 외과 의사(外科醫師) 친구가 있었다.

나이 들면 여생(餘生)을 함께 보내자고 시골 텃밭도 공동으로 구입하고, 하여간 꿈같은 설계에 항상 함께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지금은 여러 사람을 거쳐 그것도 희미한 근황을 들을 뿐이다.

지나치게 먼 훗날의 약속을 도모(圖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성격이 불같아서 레지던트 생활을 할 때, 인근의 불량배들이 싸움질을 하다 부상을 입고 병원을 찾아오면 굵은 소금으로 상처 부위를 빡빡 문질러 소위 어깨 세계의 공적(公敵)이 됐다.

천하의 사나이가 이것도 못 참아서 어떻게 멋진 건달이라고 하느냐? 삼국지(三國志)의 관운장(關雲長)은 화살을 맞고도 태연히 바둑을 두는데…. 가당찮게 관운장의 풍모를 건달들에게 강요했다.

대단한 사람을 내세워 평범한 사람을 제압하는 것도 경이로운 용인술(用人術)의 하나였다.

하여간 주량(酒量)이 작은 친구에게는 이태백처럼 멋진 사람이…. 원샷합시다. 이런 식이었다. 대게는 꼼짝 못하고 그의 뜻을 따르는데 본인 또한 술 마시는 속도가 빨라 초음속을 뜻하는 마하(mach)라고 불렸다.

특히, 노인네 환자들이 여기도 저기도 아프다고 하소연 하면, “동년배 환자들과 비교해 보면 청년입니다. 어르신네들 국산 육십년 쓰면 잔고장이 나는 법입니다. 저도 나이 사십이지만, 고물(古物)에 가까운 중고(中古)입니다. 그러려니 하고 참으세요.” 먹혀들 수 밖에 없다. 의사인 자기가 더 아픈데가 많다고 했으니…. 이런 위로 겸 심리 치료를 곧잘 했다.

그런데 이상하리 만큼 반응이 좋았다. 꾸미지 않은 말투와 종이에다 그림까지 그리고 설명해주는 친절. 소화가 안 되는 내과계통의 환자도 그리고 소아과에서 진료를 해야 할 어린 아이가 열이 나도 찾는 토털. 소위 백화점(百貨店) 병원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파서 병원을 찾는 아이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있는 것이다. 누구누구 그 동안 잘 있었느냐 혹은 누구누구 어머니…. 하여간 신통했다.

천재적인 암기력에 비법을 물었더니, “접수할 때 종전의 진료카드를 슬쩍 보면 나이, 가족관계 모두 기록이 돼있는데…. 조그마한 친절에도 환자들은 감격하기 마련이거든. 일종의 사기(詐欺)!”.

하여간 사나이다운 풍모에, 생각하는 것도 굵은 친구가 이런 세심한 면도 있구나! 놀라지만 아내에게는 재떨이, 물 가져와라, 라면에 계란 넣고, 절대로 파 넣지 말고…. 잘못 알아듣고 파를 넣으면 목소리가 담을 넣었다.

전형적인 가부장(家父長)적인 행동에, 그의 아내는 숨도 못 쉬었다.

그러다 보니 금슬이 영 말이 아니었다. 결국은 이혼보다도 훨씬 복잡한 별거 상태에 돌입했는데 그 친구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타 도시에 병원을 개업하고, 세월이 흘러 그 집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 느닷없이 전화가 왔다.

아이가 기숙사에 있었는지 좀 행실이 바람직하지 못해 쫓겨나게 생겼는데 학교에 가서 집안 사정 이야기를 부탁했다.

학교에서 간신히 서약서도 쓰고 다시 기숙사 생활을 하기로 허락을 받고 그 아이와 마주 앉았다. 또래 아이들 보다 체구가 훨씬 작았지만 눈빛은 무척 날카로웠다.

“힘들지?” “네….” “가장 힘든 것이 뭔데?” “토요일, 모두 집에 가는데 저 혼자만 기숙사에 남아서….”

어느 덧 훌쩍거리고 있었다. 돌아 올 때마다 “책임”이란 단어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부모의 한쪽 또는 양쪽이 죽거나 이혼하거나 따로 살아서 미성년인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가정을 우리는 결손가정(缺損家庭)이라고 부른다.

이 결손 가정 가운데 이혼을 한 경우가, 소위 후천적 DNA로 자리 잡아 이혼 한 부부의 자녀 가운데 37%가 또 이혼을 한단다.

결혼은 판단력 부족, 이혼은 인내력 부족, 재혼은 기억력 부족이란다.

멋진 것을 다 갖춘 그 친구 딱 한 가지를 빠트렸다. 가정에 대한…, 그리고 사회적 책임.

부족함 때문에 일어나는 사회적 책임의 한계는 과연 누가 져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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