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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나라 건륭제 13년(1748) 장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가 물속에 들어갔다가 허리가 잘린 채 물 위로 떠올랐다. 보고를 받은 황제는 수 만 병졸을 풀어 물줄기를 돌리고 강바닥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강바닥에는 쇠뇌와 창검이 장치돼 있었다. 그 아래 무덤이 있었는데 관 속에서는 황제의 면류관과 복장을 갖춘 시신이 나왔다. 조조의 시신이었다. 건륭 제는 유비의 소상 앞에 조조의 시신을 무릎 꿇게 하고 참수했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차라리 내가 천하를 배신할망정 천하가 나를 배신하게 하지는 않겠다.” 조조(曹操,155~220)에 대한 인물평으로 널리 회자되는 말이다. 소설 삼국지는 물론이고 여러 정사(正史)는 조조를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인 루신(魯迅)은 “조조를 매우 존경한다”고 했다. 현재 중국의 ‘르네상스 맨’으로 불리는 이중톈(易中天) 역시 조조를 ‘사랑스러운 간웅(奸雄)’이라고 추켜세운다. 이처럼 평가가 엇갈리는 ‘문제적 인간’ 조조는 군자금을 대기 위해 역대 제왕들의 묘를 부지기수로 도굴했다. 아예 도굴을 전담하는 모금교위(摸金校尉), 발구중랑장(發丘中郞將)같은 직제를 둬 조직적으로 부장품을 도둑질했다. 그래서였을까. 조조는 죽기 전 박장(薄葬)을 유언한다. “내가 죽으면 평소 입던 옷으로 염을 하고 호화로운 보석이나 진주 같은 보물을 하나도 넣지 말라. 봉분을 만들지 말고 척박한 산에 그대로 장례를 지내라.” 조조는 이렇게 박장을 유언하는 한편 도굴에 대비한 의총(疑塚)을 장하 주변 72곳에 만들게 했다. 그가 죽자 유언대로 업성의 성문을 나서는 장례 마차는 모두 72대였고, 각기 다른 곳에서 장례를 치렀다.

중국 국가문물국은 지난 6월 작년 말 (河南)성 안양(安陽)현에서 발견된 조조의 고릉(高陵)을 2009년 10대 고고학 발견물 중 하나로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진위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듯 했으나 최근 다시 중국의 역사 고고학자 23명이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말 많은 사람을 조조 같다고 한다. 여하튼 죽어서도 말 많은 조조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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