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처서가 지났다. 따가운 햇볕도 누그러질 때다. 새로운 내각에 입성하는 총리를 비롯한 장관, 경찰처장, 국세청장에 대한 인사 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날씨처럼 새 내각이 신선한 기운을 가져다주면 좋겠다. 허나 청문회 분위기는 그런 기운을 기대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단골메뉴로 논란이 된 ‘위장전입’ 덫에 걸려 든 인사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그러하다.
우리들은 크고 대단한 것에 감동하지 않는다. 작지만 진실한 것, 조촐하지만 품격 있는 것들이 심금을 울린다.
이제는 ‘위장전입’은 고위공직자로서는 결격사유에 해당된다는 대사회적 경고의 메시지가 돼야 한다. 고위공직자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조직원이며, 나라의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책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식인들이나 사회 지도자들의 삶은 역사의 테두리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날 수가 없다. 정치, 경제, 사회, 기업에서 예술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모든 정답을 제시하면서 흘러왔다. 어떤 경우에도 오답(誤答)은 인정하지 않는다.
결코 정답을 회피하고, 오답으로 얼버무리겠다는 경박한 생각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역사의 강물이 언제나 준엄하게 소용돌이치면서 흐르는 까닭이다. 보편적으로 많이 행해졌다는 이유로 ‘사회적 합의’로 어물쩍 넘기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위가 검으면 아래가 흴 수 없다’는 속담은 오랜 세월 살아 움직이는 진리다. 사람은 일생동안 많은 난제에 부딪힌다. 이 문제에 어떠한 태도와 방법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인사 청문회에 나서는 그들이라고 모든 이치를 다 꿰뚫는 것은 아니다.
수원(水源)이 맑으면 흐르는 물이 맑은 법이다. 윗물이 더러우면 아랫물도 더럽게 마련이다. 사회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공익을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 정책을 펼쳐야 할 책무가 있는 고위공직자가 아닌가. 90도 각도로 허리 굽혀 사과했다고 쉽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이번만은 엄격한 잣대로 검증해야 마땅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가장 부각하고 싶어 하는 키워드가 ‘공정한 사회’가 아닌가.
인사 청문회를 잘 넘기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밟는 것이지만, 잘못된다면 낙마의 문을 두드린 결과가 된다. 갖가지 장애물이 많지만 ‘위장전입’이라는 돌부리에 넘어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세상을 살면서 피해야 할 일이다.
수단은 만능이 아니다. 위장(僞裝)은 ‘남의 눈을 속이기 위해 사실과 다르게 거짓으로 꾸밈’이라는 게 자전적 의미다.
법을 어기고 자녀를 위장전입 시킨 이들이 윗자리에 수장으로 앉아 법을 공정하게 집행할 자격이 있나. 인사 청문회에 나서는 이들이 면죄부를 받는다면 위장전입이라는 용어는 없어져야 한다. 편법과 위법을 했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요령껏 피하면 살아남는다면 사회질서는 무너지고 만다.
그것은 민의(民意)가 아님을 청문회에 나서는 여·야 국회의원들은 정확히 읽어야 할 것이다. 도덕과 훌륭한 인품은 잘못을 즉시 바로잡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고위공직에 앉은 사람이 도덕적으로 타락한다면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그 힘은 오래가지 못한다.
칭송받는 공직자는 그들의 지위가 높아서가 아니라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덕(德)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덕을 해치는 행위는 영원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역사의 죄인이다.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명예를 얻는다.
도덕의 힘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도덕은 형태가 없지만 그 효과는 두드러진다. 우리들이 매사에 도덕을 마지노선으로 삼아야할 이유다.
정치 지도자는 국민들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다. 솔선수범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부끄럽지 않고 떳떳한 인물들만이 인사 청문회의 신성한 산을 오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대다수 국민의 소리이자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