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만에 40대 국무총리 지명으로 기대를 모았던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29일 자진사퇴했다. 8·8 개각에서 총리에 지명된 지 3주 만의 일로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면서 국민 여론은 물론 한나라당 내에서 조차 반발 기류가 급속히 확산되자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청문회 전부터 제기된 각종 루머나 의혹에 대해 나름대로 해명하며 청문회의 관문을 통과하는 듯 했으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처음 만난 시점이 2007년이었다고 했다가 2006년 가을이라고 말을 바꾼 게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6개월가량 앞선 2006년 2월에 두 사람이 나란히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상황이 극도로 악화됐다. 이에 청와대의 간곡한 메시지에도 여당 의원들조차 등을 돌렸다. 따라서 총리로 지명되며 일약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로까지 불리던 김 후보자는 이젠 정치생명마저 보장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국회는 지난 27일 본회의를 열어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동의안 처리 전단계인 인사청문특위 차원의 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야당의 반대로 불발되면서 본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야당 의원들이 임명동의안 처리를 막은 셈이지만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발 기류가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여러 의혹에 대해 명쾌한 해명을 못하고 거짓말이나 다름없는 말 바꾸기를 한 김 후보자를 총리로 만드는 데 동원될 수 없다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격앙된 분위기는 이날 오전 열린 의원 총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비공개로 열린 의총에서는 2012년 총선에서 고전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강한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7~8명이 발언을 했다. 김 후보자를 인준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고,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청와대를 성토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자 청와대도 부랴부랴 김 후보자의 적격성 여부를 놓고 여론 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자의 사퇴로 젊은 층의 지지와 6.2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영남권의 민심이반을 의식해 ‘세대교체형’총리를 지명한 청와대의 고민은 다시 시작됐다. 집권후반기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였다면 검증되지 않은 미완의 세대교체형 총리보다는 두루 경륜을 갖춘 총리를 선택했어야 옳았다. 아직은 대다수의 국민정서가 파격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임총리의 신중한 선택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