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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잃어버린 명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하인리히 뵐이 쓴 “잃어버린 명예”란 작품이 있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면 서점가는 잠시 활기가 도는데, 평소 책을 멀리한 사람도 신문 광고에 현혹(眩惑)되어 서점을 기웃거린다.(사실은 좀 창피하다.)

 

나도 이 경우에 속하는데 홈쇼핑을 보면서 ‘충동구매(衝動購買)’ 하는 것과 유사했지만 책을 모두 읽고 난 뒤에 나의 선택에 흡족했다.

대부분 노벨상 수상 작품은 작가가 주는 의도(意圖)한 바가 있어서 읽기에 머리가 아픈데, 이 책은 무척 재미있었다. 그리고 섬뜩했다.

언론의 치부. 언론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들추어 낸 작품이다.

어느 일요일 한 일간지 기자가 총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범은 카타리나 블룸이란 나이 스물일곱 살의 모든 것이 보통이랄 만큼 평범한 여인, 우리 이웃의 말 없고, 자기 분수를 알고 능동적이 아닌 항상 피동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처녀를 연상하면 된다.

식당 서빙에서부터 가정부로 일해서 작은 아파트와 중고차(中古車)를 마련한 아주 소박하다. 그리고 근면했다. 한국식 표현대로 하면, 법 없이 살 수 있는 여인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소곳하더라도 사랑을 갈망하는 뜨거운 피를 지닌 여인이다.

우연하게 파티에서 만난 남정네가 경찰에 쫓기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와 사랑을 나눈 사이임으로 별 죄책감 없이 도주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하이에나처럼 특종을 찾는 것이 기자의 생리. 오죽하면 사건이 없을 때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 싶다는 기자들이 아닌가! 치사하고 더러운 일간지 기자가 이 사실을 포착한다. 기자는 그때부터 제멋대로 기사가 아닌 소설을 쓴다.

순식간에 ‘살인범의 정부’, ‘테러리스트의 공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로 신문에 오르내린다.

어떻게 가정부가 아파트를 소유하느냐 그리고 자동차는? 은행에서 강탈한 돈을 배당(配當)받은 것은 아닌가? 허무맹랑한 언론의 날조에 시민들이 편승(便乘)을 넘어 갈채를 보낸다.

가끔 뉴스에 소위 앵커나 리포트를 하는 기자가 “심각한 우려”, “대부분이…” 이런 추상적인 말을 쓰는데 나는 이를 혐오한다.

심각과 대부분이 어떤 기준인가? 다시 소설 이야기로 돌아간다.

성직자인 신부(神父)도 “나는 그녀가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는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한 동안 청소부로 일하게 해줬더니 미사용 포도주를 훔쳐서 정부와 술판을 벌인 적도 있습니다”.

남자가 포도주를 자기 것이라고 속이고 카타리나의 어머니를 유혹할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지금도 흔히들 자기의 생각을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가끔 발견할 수 있다. 위험한 사람들이다. 자기의 판단으로 남을 척도 하는 짓! 이것은 악의를 넘어 범죄라고 할 수 있다. 전 남편이란 작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몰래 떠났는지 나의 단순한 애정보다는 살인범이자 강도인 그 남자의 애무가…”

모두가 그 여인을 떠난다. 그리고 굴리는 눈덩이마냥 의혹의 부피는 더욱 부풀어 간다. 결국은 살인이란 방법으로 응징하는데….

재미난 소설이라고 페이지를 넘길 수 있지만, 혹시 주인공이 당신이라면? 피를 토하는, 몸서리치는 억울함만큼, 사람을 열나게 하는 것은 없다. 그 고통은 당한자만 알 것이다. 그러나 여론은 무서운 것. 부모, 형제 그리고 성직자조차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 든다. 당사자는 팩트에서 억울하고, 주위 사람들의 의심어린 눈초리에 두 번 죽게 된다. 신정아라고 기억하시는지?

학력위조 파문으로 2007년 내내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사람이다.

생소했던 큐레이터란 직업도 관심의 대상이 됐고, 1년 6개월의 수감 생활을 했다.

당시 정부의 고관과 주고받은 연서는 그 와중에서도 애틋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누드 사진의 진실 여부와 함께 우리들에게 꽃뱀의 인상도 함께 줬다.

명품을 즐긴다고, ‘에르메스의 여인’이란 멋진 별명도 얻었다. 이젠 기억하시리라. 검찰기소 내용은 횡령, 배임 등이나 최종적인 판결은 학력위조 하나이다.

신정아 게이트라고 까지 하고, 정치인 중 한 명은 몸통은 대통령이고 하고, 국내 뉴스 일간지는 누드 사진을 게제하고….

이 여인이 요즘 빠져있는 책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고 한다. 신정아氏가 아니고 이 땅의 모든 언론 종사자들이 읽어 마땅하다.

망치가 가벼우면 못이 솟아오른다. 망치는 누구, 못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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