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이 특채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 같은 특혜와 반칙이 비단 이번 일에 그치지 않고 한국사회에 구조적으로 고착돼 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조직의 구조와 운영에 특혜와 반칙이 난무하는 ‘불공정한 사회’임을 의심하는 국민이 갈수록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공동체 의식은 한국고유의 긴밀한 네트워크인 혈연, 학연, 지연에 있다.
연을 중시하는 전통은 인간관계의 긴밀도를 높혀 내 일과 남의 일을 굳이 가리지 않는 공동체 의식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983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다. TV를 통해 상봉장면이 중계되자 온 국민이 마치 내 형제부모처럼 눈물을 흘렀던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혈연 지향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2년 한·일 월드컵’때는 온 국민이 빨간색 셔츠를 입고 붉은 악마로 변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장롱속의 금붙이를 성금으로 쏟아냈다. 우리가 남인가라는 의식이 특별한 위력을 발휘했다.
이러한 연줄은 일종의 확대가족주의로 한국전쟁과 위기시에 국가가 개인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시기에 세상의 거친 바람으로부터 개인을 지켜주는 보호막 역할을 했다.
이러한 인연은 우리 사회가 인적 자원을 탐색하는데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가져다주는 효율적인 측면도 있었다.
이와 같이 연을 바탕으로 형성된 공동체의식의 발현은 한국인의 심성을 좌우하는 영적인 존재였다. 혈연은 과거 토지중심으로 혈족이 뻗어나가면서, 지연은 이를 중심으로 생활이 이뤄지면서, 학연은 교통이 발달되지 않아 지역사회내에서 교육이 이뤄지다보니 자연스레 발생했다.
이 같은 사정을 미뤄보면 한국은 커다란 지연사회인 셈이다. 이런 연줄은 영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만큼 한국에만 있는 유별난 문화가 아니다.
혈연·지연·학연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의식은 국난극복 등에서 제 몫을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충분히 내포하고 있지만 지역주의와 폐쇄주의, 줄서기와 왕따, 불공정한 사회와 경쟁적 이중구조의 원인이 되는 폐단도 명백히 존재한다.
어떤 사람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자 차를 세워 놓고 경찰관이 보는 앞에서 휴대폰으로 모든 연줄을 동원해 검찰, 법원, 경찰에 근무하는 사람을 찾고 있다.
기업에서는 일도 제대로 못하는데 단지 누구의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데리고 있는 상사도 있다.
상사가 그 직원을 자르고 싶어도 높은 직책의 친인척이라 자르지도 못하고 그 친인척이라는 사람은 그 연줄을 이용해 권력을 전횡하고 줄을 세우고 파벌을 조성한다. 교수직 및 고위관료를 채용할 경우 동문명단을 통해 누가 실세이고 몸통인지, 선후배의 학연을 총동원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우리가 남인가’ 라는 귀속용어는 한국 사람들이 혈연, 지연, 학연에 얼마나 얽매이는가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혈연, 학연, 지연을 중심으로 한 동류의식의 집착은 자기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속성과 다르면 배척해 버리는 집단따돌림 현상을 만들어 낸다.
이로 인해 왕따가 양산되고 자살이 빈발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작은 단위지역을 매개로 하는 소지역주의는 각종 선거때마다 표심을 흔들면서 정책중심의 선거풍토를 만드는데 걸림돌로 작용하며, 지역과 지역사이의 갈등을 조장해 사회통합에도 장애물이 되고 있다.
한국 경제에도 철저한 경쟁의 이중구조가 지배되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경제적 강자들은 독과점과 담합을 통해 경쟁을 회피하면서도 약자들에게는 피눈물 나는 경쟁을 강요한다.
혈연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공과 사의 구별이 없어지고 업무의 분별력이 떨어져 국가가 확대가족주의로 변하는 불공정한 사회로 줄서기와 반칙의 온상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연줄중심의 구조에서는 어떠한 참신성과 창의성도 통하지 않으며 의사결정을 독점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폐쇄적인 구조가 되기 쉽다.
혈연에의 애정이 열린 공동체를 지향하는 확대 가족주의일 경우 바람직한 에너지를 발산하지만, 밀폐된 독점적 특권으로 나아갈 경우 왕따와 양극화의 갈등집단만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