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플로리다 대학의 곤충학자인 톰 워커는 귀뚜라미 소리로 온도를 알아냈다.
13초 동안 귀뚜라미 울음소리 횟수를 센 다음 거기에 40을 더하면 대략 화씨 몇 도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귀뚜라미 중에서도 북미 지역에 서식하는 흰나무귀뚜라미는 아주 정확해 온도계가 필요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처럼 가을의 전령사요, 기상예보관이기도 한 귀뚜라미가 날씨 탓인지, 들리지가 않는다. 시인 박용래는 ‘귀뚜라미 정강이 시린 백로(白露)’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백로(8일)가 지난지가 한참인데도 비와 무더위가 반복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우중한 날씨 탓인지 매미도 일찌감치 자취를 감춰버렸다.
대신에 꼽등이란 달갑지 않은 녀석이 떼지어 도심에 출몰한다고 한다.
생김새는 귀뚜라미 비슷하나 메뚜기목에 속하는 녀석인데 꼽등이는 껍데기가 얇아 수분이 없으면 금방 말라 죽는 곤충이다.
그런데 동굴에 사는 꼽등이가 도심으로 진출한 것은 잦은 비로 공기가 습해지자 사람이 사는 곳까지 활동반경을 넓힌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올해는 평년보다 비가 자주 내렸다. 기상청이 지난 6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여름(6~8월) 강수일수는 44.2일로 평년(36.8일)보다 7.4일 많았다.
9월 들어서도 연일 비가 계속되고 있다. 가을비는 유행가 가사로 쓸쓸한 심사를 달래 주곤 했다. 시인에게도 단골 소재가 되는 가을비다.
하지만 거의 장마철 수준으로 내리는 가을비는 더 이상 달갑지 않은 불청객일 뿐이다. 수확의 계절에 쏟아지는 폭우로 채소값은 그야말로 금값이 됐다.
요즘 식당주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말이 “상추 좀 더 주세요”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농수산물유통공사 자료를 보면 상추는 물론이고 애호박이나 오이, 미나리, 시금치, 대파, 마늘 등 채소가격이 최근 5년간 평균가격보다 2~3배가량 급등했다.
봄에는 이상저온으로 냉해를 입히더니 긴 장마와 이달 초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 ‘곤파스’로 채소농가가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젠 제발이지 비 좀 그만 내리고, 청량한 날이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귀뚜라미도 어서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울 수 있게 말이다.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