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제일 마음 어수선한 사람이 누구일까?
실향민(失鄕民), 수몰민(收沒民)…, 웃는 사람보다 한숨 내쉬는 세태(世態)에서 둥그런 보름달마져 (각)角져 보일수도 있다.
하여간 모두 가슴 아프리라, 그런데 한국 총각과 결혼한 타국 새댁들….
한국에 건너온 것은 여러 가지 사연이 있겠지만 심청이 효심(孝心)이 가장 큰 이유인데, 그네들이 시집 풍습에 맞춰 한복 곱게 차려입고 겉으로는 웃고는 있지만, 마음은 멀리 친정 부모에게 가 있으리라. 명절이 유독 마음 무거우리라.
얼마 전, 국방일보(國防日報)를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다.
(국방부에서 발행하는 일종의 정책 신문)이런 신문일수록 딱딱한 줄 알았는데 신문 하단에는 건강식품광고도 있고, 일반 상식, 연예계 소식도 있어 선입견(先入見)이 크게 잘못 됐다.
또 하나 놀란 것은 우리가 군대 생활을 할 때, 가장 무섭고 겁나는 것이, ‘보안(保安)’이었다.
통신 보안부터 시설보안…. 숱한 보안 때문에 입도 뻥끗하는 것이 두려워 차라리 벙어리, 귀머거리가 되는 것이 상책이었던 시점도 있었다.
군사기밀 보호법(軍事機密 保護法), 고의던 아니던 결과가 이적행위를 하면 처벌 받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법이다.
부대 내의 사고도 기사화 할 수 없고…, 군과 관계된 모든 부분이 성역시 돼, 근처에도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당시 기준을 적용한다면 요즘 국방일보는 온통 모두 군사기밀 보호법에 저촉된다.
하여간 세월이 많이 변했다.
그리고 좋아졌다. 내용도 다양해서 이것저것 살펴보다 알고 있는 사람의 사진이 있어 깜짝 놀랐다.
이름은 분명 그 사람인데, 얼굴은 사진보정(Photoshop)을 했는지 어울리지 않게 피부 빛깔이 뽀얗게 보여 하마터면 다른 사람으로 알 뻔했다.
제목은 ‘다문화(多文化) 가정 지원에 나선나 김도호 공군 준장’
나는 그 사람을 알 고 있다. 기사내용을 모두 읽지 않아도 내 입에서 나올 말은, “역시!”
내용은, 어느 비행단 단장으로 근무할 때 베트남 대사(大使)가 부대를 방문해 자국 출신 결혼이민 여성을 만나고 싶다고 해서 주선을 했단다. 대사가 한 명 한 명 끌어안으며 친정아버지의 역할을 한 후, 헤어질 때는 대사와 김 준장 모두 울었단다.
장군이 웬 눈물? 이 일이 있은 후, 전 장병들에게 다문화가정을 지원할 것을 절실히 호소했다.
구체적인 결실로, 공부도 가르치고 장학재단도 설립했는데, 6개월 만에 오천만원 가까운 거금(?)이 모였단다. 그래 맞다. 사람 사는 최고의 도리가 사소한 곳에 대한 배려 아이던가.
장학금 혜택을 받든, 안 받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먼 이국땅에서도 생각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그들이 얼마나 든든해할까? 외교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서로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 주는 노력, 얼굴도 말투도 무골상인 그에게 이처럼 세심한 부분이 있다니….
가장 군인다우면서도, 세심한 데가 있다.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할 때 어깨 펴고 눈을 부릅 뜬 한치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 그러나 부관에게도 집안어른처럼 살갑게 대하는 태도, 우리네 다리 펴고 편히 자는 것도 저네들의 덕분이니 하경
우리는 군(軍), 관(官), 민(民) 시대에 살았지만 이젠 민·관·군 시대가 아닌가. 순서가 문제가 아니다.
공군부대에 골프장은 체력단련장이다.
월남새댁이 체력단련장 도우미로 근무하는데, 한국말이 서툴러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불편하지만, 김 준장이 일일이 양해를 구한다고 한다. 참으로 인생가화.
장군의 그릇에 인장(仁將), 덕장(德將), 용장(勇將)이 있다고 하면 그는 인장이다.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 존경 받는다. 어수룩한 것 같으면서, 한 곳을 향하는 의지!
그리고 남의 일이지만 내일처럼 감정이 솟구치면 눈물 흘리는 용기! 내가 그 사람을 안다. 괜찮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