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토일렛’은 1~2대 민선 수원시장과 국회의원, 세계화장실협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심재덕 선생의 별명이다. 그는 이 별명을 사랑했고 아예 자신의 집이었던 ‘해우재’ 문패로 떡하니 붙여놓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1월 14일 많은 이들의 슬픔과 아쉬움 속에서 세상을 떠난 뒤 1년 8개월만에 창립된 (사)미스터토일렛 심재덕기념사업회 정식명칭으로까지 대접받게 됐다. 지난 15일 수원시체육회관 강당에서 열린 ‘미스터토일렛 심재덕기념사업회’ 창립총회 참석자들은 그가 지방자치의 자존심을 지킨 사람이었고, 지방자치시대 문화사업의 표본이었으며 세계 화장실 운동을 이끌었던 거인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심재덕 선생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당적을 가져선 안 된다고 역설했던 ‘지방자치 무소속주의자’였다. 그리고 무소속으로 수원시장에 출마해 두 번이나 연이어 당선됐다. 수원시장 시절에는 서울 청계천보다 10년 먼저 수원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시켰다. 그가 수원문화원장 시절부터 추진했던 이 사업으로 인해 생명의 가망이 없어 보이던 수원천은 물고기가 헤엄치고 백로가 돌아온 자연형 하천으로 기적처럼 살아났다.
또 수원화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킨 것도 온전히 그의 공이었다. 정부 관계자조차 비관적이었던 수원화성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해 그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는 현지로 날아갔다. 위원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함으로써 유보될 뻔 했던 수원화성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성사시켰다. 또 불가능해 보였던 화성행궁을 복원했다. 그 덕분에 지금 수원은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문화관광의 도시가 됐다. 지난 2002년 월드컵 경기를 수원에 유치하고 월드컵 경기장을 지은 것도 그의 뚝심이 작용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세계적인 인물로 인정받게 된 것은 화장실문화운동 때문이었다. 우선 돈 낭비란 비판을 받으면서도 수원시내의 공중화장실을 혁명적 수준으로 개선했다. 세계 언론들은 앞 다퉈 수원을 취재해갔고 곧이어 국내외 벤치마킹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다. 수원은 화장실문화운동의 메카가 됐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세계화장실협회를 창립하고 본부를 한국에 유치했다. 아예 자신의 집을 변기 모양으로 짓고 택호를 ‘해우재’라고 명명할 정도로 화장실문화운동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가족들은 사재로 지은 해우재와 땅, 유품을 수원시에 무상으로 기증했으니 가족들도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지난 15일 열린 기념사업회 창립총회를 계기로 그의 유지가 영원히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