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역두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개찰구에는/ 못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병든 역사가 화물차에 실려 간다//대합실에 남은 사람은/아직도 누굴 기다려//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목 놓아 울리라//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있다’. 오장환(吳章煥,1918~1951)의 시 ‘더 라스트 트레인(The Last Train)’의 전문이다. 오장환은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안성에서 공립보통학교(현재 안성초등학교)를 다녔다. 그의 부친(오학근)이 안성의 지주였던 점으로 볼 때 오장환의 뿌리는 안성인 셈이다. 그럼에도 그가 졸업한 ‘안성초등학교 100년사’에 그에 대한 언급이 없을 정도로 고향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인물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월북시인’이란 이유 때문이었다. ‘병든 서울’, ‘나 사는 곳’과 같은 절창을 남긴 빼어난 서정시인이었던 오장환은 이념적으로 좌익에 경도됐고, 해방공간에서 북을 선택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로 시작되는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는 간이역의 풍경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친구인 임철우는 ‘사평역’을 제목으로 한 단편을 내놓았고, 노래로도 만들어졌다. 이처럼 기차는 떠나보내야 할 것과 기다림이란 이중성을 갖는다. 이른바 ‘7080세대’들에겐 1970년대 하남석이 불러 히트한 ‘밤차로 떠난 여인’을 기억할 것이다. 이 노래를 들으며 혹은 읊조리며 마치 노랫말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가슴 시렸던 추억은 첫사랑마냥 아련하다.
이제는 간이역의 풍경도 속도에 밀려 하나 둘 사라지고, 추억만이 남았다. 1899년 9월 18일 경인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이 땅에 기적소리가 울린 지 올해로 111년을 맞는다. ‘화륜기의 소리는 우레와 같이 천지를 진동 시켰으며, 차량 안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움직이는 것 같았고. 나는 새도 이를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경인선철도가 개통되자 독립신문에 난 글이다. 그러나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도 1974년 전철화 되면서 쫓기듯 예전 낭만을 잃어갔다.
/이해덕 논설위원